석상 높이 165㎝, 최대 폭 48㎝. 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석인상이 위치한 능동마을은 능동삼거리에서 장유터널 쪽을 따라 나 있는 소로(小路) 대청로261번길이 끝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마을이라 해야 거의 몇 집 남아 있지 않다. 석인상은 이 마을 뒤쪽의 상수도 저수장 근처 낮은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석인상은 조선시대 사대부묘의 예와 같이 두 구로 이루어졌으며 약 9m 정도의 사이를 두고 마주 서 있다. 석인상을 앞에 두고 있는 봉분은 현재 크고 작은 두 기가 나란히 있는데 중심은 큰 무덤에 있다. 직사각형의 돌기둥을 깎아 놓은 듯한 석인상은 측면과 뒷면까지도 표현되어 있다.
머리에는 복두(幞頭)를 쓰고 조복(朝服)을 걸친 채 바른 자세로 서서 양손으로 홀을 받쳐 들고 있는 일반적인 형식이다. 홀은 길고 좁으며 그 위쪽에 턱 끝을 고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양 팔뚝에서 늘어진 소맷자락은 측면을 거쳐 뒷면에까지 표현되었으며 좌우로 뻗어 내린 소매의 옷주름이 자연스러운 편이다. 등 뒤의 소맷자락 사이로는 또한 허리에 묶은 관대(官帶)가 보이고 있다.
두 상은 거의 비슷한 조각 기법과 기술을 보이고 있으나 세부 처리와 마무리에서 향우상이 좀더 깔끔하고 정교한 표현을 보이고 있다.
큰 무덤 앞에는 6기의 돌이 놓여 있는데 이중 5기는 자연석이며 무덤 정중앙에 놓여 있는 돌이 ‘상석(床石)’으로 지정된 것이다. 지표 위로 약 47㎝ 정도의 높이에 가로 약 116㎝ 길이이다. 갑석(甲石)의 두께 약 6㎝이며 면석(面石)에는 안상(眼象) 같은 무늬가 표현되었다.
그런데 이 무늬는 면석을 3등분했을 때 양쪽 1/3되는 지점에서 기둥 모양을 새기고 두 기둥의 안쪽 선이 안으로 구부러지며 하나의 안상을 이루고 바깥쪽 선이 바깥쪽으로 구부러지며 중앙 안상의 반(半)을 형성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양쪽 두 개의 공간은 그 양옆으로 똑같은 모양의 돌과 연결되었을 때 완성된 안상이 된다. 따라서 이 상석은 원래 여러 기의 돌 가운데 한 기가 남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묘 앞 석물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일반 묘제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제작 시기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석인상에 표현된 돌기둥 같은 신체, 네모진 얼굴 그리고 둥그런 눈에 커다란 코 등에서 풍기는 장승 같은 풍모가 조선 중기에 보이는 일부 사대부묘의 석인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조선시대 중기의 석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