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리 마애불상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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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도전리마애불군상
산청도전리마애불군상
조각
유물
문화재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에 있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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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에 있는 신라 말 고려 초의 불상군.
내용

198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도전리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 낮은 산의 경사면 자연 암벽에 새겨진 불상군으로 모두 좌상이다.

머리 부분을 새기다 그만둔 흔적을 보이는 상을 제외하면 현재 남아 있는 불상은 모두 29구이다. 이 가운데 2구는 대좌와 결가부좌한 다리만 남았으며 1구는 대좌만이 남아 있다.

불상은 4개의 층으로 나뉘어 아래로부터 15구, 그 위에 9구가 배치되었다. 3층에 2구, 4층에 1구, 3층과 4층 사이에 2구가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불상의 크기는 대체로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큰 상을 먼저 새기고 남은 공간에 점차 작은 크기의 상을 새겨 나갔을 것으로 짐작된다.

상의 왼편이나 오른편에는 2자에서 4자 정도로 이루어진 명문을 동반한 상이 많다. ‘菩薩札白(보살찰백)’이라든가 ‘菩薩’이나 ‘先生’ 등의 글자를 판독할 수 있다.

불상은 모두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상이다. 마모가 심해 분명히 알아볼 수 없으나 머리는 소발(素髮 : 민머리)과 나발(螺髮 : 부처의 머리카락.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 섞여 있다. 총탄 자국으로 보이는 마모 흔적 때문에 상호(相好 : 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훌륭한 용모와 형상)는 알아보기 어렵다.

양어깨에는 V자형의 목깃을 이루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다. 좌우 어깨에서 내려오는 세로의 옷주름 선을 음각하였다. 3구 정도는 완만한 U형의 주름이 배 앞에 늘어지도록 표현된 경우도 있다.

수인(手印)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 선정인(禪定印 : 두 손을 가지런히 배 앞에 모은 손 모양)을 한 손 위에 약함을 받쳐든 상도 있다. 그러나 대체로 선정인의 수인을 맺고 있으며, 손의 위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경우보다 대체로 가슴까지 들어 올리고 있다.

2층에 배치된 상 가운데는 왼손으로 보주(寶珠)를 받들고 오른손으로 덮듯이 감싸 쥐고 있는 상이 2구 있다. 4층에 표현된 1구는 선정인에서 오른손을 들어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이 상들은 각기 크기는 다르지만 법의는 모두 4줄의 완만한 U형 주름으로 표현되었다. 원형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과 신광(身光 :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은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한 예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윤곽선 안을 파내어 표현하였기 때문에 불신(佛身)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대좌는 대체로 단판단엽의 연화대좌이나 앙 · 복련(仰 · 伏蓮)을 갖춘 대좌도 있다.

불신은 돋을새김하고 옷주름을 선각하였는데 크기가 작은 탓인지 세부를 섬세하게 조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정 근엄한 인상에 평행한 띠 형식의 옷주름 표현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 고려 초에 조성된 작품으로 생각된다.

불상군의 특이한 배치나 형식, 수인 등의 구성과 관련하여 보다 깊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조성 당시 이 지역에서 유행했던 불교 신앙의 한 측면이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집필자
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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