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53m. 197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팔각의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좌상으로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를 잃었으며 전체적으로 표면의 마모가 심한 편이다.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계란형의 갸름한 윤곽이며, 이목구비의 세부는 살펴보기 어렵다.
넓게 벌어진 어깨에는 통견(通肩 :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치고 있다. 그리고 법의 깃이 넓게 트인 가슴에는 의복이 표현되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올려 땅을 가리키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을 취하고 있다.
대좌는 상 · 중 · 하단을 갖춘 연화대좌로 상대석에는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 하대석에는 복련(覆蓮 : 아래로 향하고 있는 연꽃잎)이 표현되었다. 상대석은 마멸이 심해 연판(蓮瓣 : 연꽃잎)이 희미해졌다.
8각의 중대석에 모서리마다 기둥을 돋을새김하였고, 각 면마다 입상(立像)의 보살형 인물상을 새겨 놓았다.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온 탓에 마멸은 심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신체에 단정한 인상의 얼굴, 넓은 어깨와 양감이 드러나는 상체 그리고 안정감 있게 앉아 있는 자세에 두부(頭部)와 신체의 비례가 조화로운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논 한가운데 위치한 이 사지(寺址)는 대동사지 또는 백암사지(伯巖寺址)라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 「백암사석탑사리(伯巖寺石塔舍利)」조에 의하면, 신라 말에 이미 폐사되어 그 세운 내력도 알 수 없었다 한다.
또한 신라 말에 10년간을 이 절에 머물렀다는 경양화상(競讓和尙)의 정진국사탑비(靜眞國師塔碑)에도 백암사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이 절의 원래 이름은 백암사가 옳은 것 같다. 절터 주변에는 비천상 등이 새겨진 잘 다듬은 석재가 흩어져 있고, 바로 옆에는 통일신라 양식의 석등이 있어 이 상이 10세기에 만들어졌을 추정을 뒷받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