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수입된 당악기(唐樂器)로 가로로 부는 적(笛)이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우리 고유의 횡적(橫笛)으로 발전된 대금(大笒) · 중금(中笒) · 소금(小笒)과 구별하기 위하여 ‘당(唐)’이라는 말을 붙였다. 당적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나는 문헌은 『고려사』로, 권80에 의하면 1076년(문종 30)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을 정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그 이전 682년(신문왕 2)에 창건된 감은사(感恩寺)에서 발견된 청동제 사리기(舍利器) 기단(基壇), 문무왕 때로 추정되는 비암사(碑巖寺)의 석비(石碑), 924년(경애왕 1)에 건립된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적조탑(智證大師寂照塔) 등에 나타나는 주악 장면의 적(笛)은 이와 함께 연주되고 있는 악기들이 당비파(唐琵琶) · 소(簫) · 생황(笙簧) 등 당악기이기 때문에 당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의하면 당적은 8공(孔)을 가졌고, 『악학궤범』에도 취공(吹孔) 1개와 지공(指孔) 7개로 합계 8공이라고 되어 있는데, 제7공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현재 국립국악원에 보존되고 있는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 시대의 당적도 『악학궤범』의 경우와 같다.
그러나 『악학궤범』에서는 그 지공 사이의 거리가 제1공에서 제5공에 이르기까지는 점점 짧아지고, 제5공에서 제7공까지는 점점 길어져서 불규칙했는데, 현재는 지공 사이의 거리가 거의 균등하다. 『악학궤범』에서 당적은 묵은 황죽(黃竹)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지금은 대금과 같이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것이 더욱 좋다.
전체 길이 및 굵기는 천연 대나무로 만드는 만큼 일정하지 않으나, 대체로 길이 35㎝, 지름 2.2㎝ 정도이며 하단의 안지름은 약 1.4㎝인데, 상단 즉 취구 쪽으로 갈수록 안지름이 약간 좁아진다. 취구에서 제1공까지는 약 9㎝, 지공간의 거리는 약 2㎝이다. 취구는 옆으로 길게 타원형으로 패었는데 길이 약 1.6㎝, 너비 약 1.4㎝이며, 지공은 원형으로 지름이 약 0.4㎝이다.
지금 당적의 음역은 청황종(淸黃鐘:{{%250}})에서 중중청황종(重重淸黃鐘:{{%093}})까지 2옥타브이며, 손짚는 법은 위의 그림과 같다. 당적은 당악기계의 악곡, 즉 「낙양춘(洛陽春)」 · 「보허자(步虛子)」 · 「만(慢)」 · 「본령(本令)」 · 「해령(解令)」 · 「유황곡(維皇曲)」 · 「정동방곡(靖東方曲)」 등에 편성된다. 음색은 높고 맑으며 영롱한 장식음을 사용하여 합주에 화려한 색채감을 준다.
1955년경까지는 향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음악에서도 당적이 사용되었는데 그 음정이 맞지 않고, 특히 음역이 좁아 많은 불편을 겪어 왔다. 그러나 1956년 3월부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에서 향악기를 중심으로 연주하는 음악에 맞는 소금(小笒)이 새로 개발, 보급되면서 당적은 별로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