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1월, 한말 일진회장 이용구(李容九)의 아들 이석규(李碩奎)가 시천교(侍天敎)를 한말 일진회의 재판인 친일 정치단체로 조직 개편함으로써 창설되었다.
이석규·송계원(宋啓源) 기타가 창설의 주동인물이며, 구 일진회 평의원 겸 북간도지부 회장인 윤갑병(尹甲炳)이 회장을 맡았다.
비상시국하에서 종교단체는 필요 없으니 시국 정치단체로 개편한다는 취지였는데, 시국강연회 개최, 창세상담소 운영, 이용구·송병준 추도회 개최, 흑룡회(黑龍會)와 함께인 ‘일한합병 공로자 감사 위령제’의 개최 등으로 친일 시국운동에 열을 올렸다.
이석규·윤갑병 일파의 이런 움직임에 반발한 대도사(大道師) 조태원(趙泰元) 등은 교단의 순수, 종교적 성격을 지키기 위해서 별도로 ‘시천교 본부 사무소’를 분립시키고, 대동일진회의 점유한 교당(敎堂) 회수의 법정투쟁 등을 벌였다.
이석규는 해방 후 다이또오(大東國男)란 이름으로 일본에 살면서, 『이용구의 생애』같은 저술로써 이용구 재평가 운동을 벌였다. 이와 연결된 선에서 출간된 것이 니시오(西尾陽太郞)의 『이용구 소전(小傳)』 등인데, 이용구를 ‘우국지사’로 평가하는 등 심하게 왜곡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