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이 들어서 제때에 모내기를 하지 못하면 다른 곡물을 파종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미 환곡은 쌀로 받았는데 다른 곡물을 재배하여 수확하게 되면 가을에 환곡을 징수할 때에는 수확한 다른 곡물로 납부하게 하였다. 그러나 쌀과 잡곡은 곡물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정확한 교환 비율을 법전에 규정하였다.
17세기 후반 이후 환곡의 수량이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환곡 징수 과정에서 대봉의 사례가 많이 발견된다. 전세(田稅)로 쌀, 좁쌀[전미(田米)], 콩 등을 징수하였지만 보리와 기타 잡곡 등도 농민들에게는 중요한 곡식이었다.
쌀과 잡곡 등은 곡물의 가치가 달랐기 때문에 호조(戶曹)에서 쌀과 다른 곡물 간의 교환 비율을 정하였는데 이를 ‘호조식(戶曹式)’ 혹은 ‘호식(戶式)’이라 하였다. 『속대전』 「호전」 창고조에서는 재해를 만난 해에는 환곡을 다른 곡식으로 대신 납부하도록 하면서 각 곡식의 교환 비율을 규정하였다.
쌀 1 섬(1섬=약 180ℓ)에 콩은 2섬, 벼[정조(正租)]는 2섬 7말(1말=약 18ℓ) 5되(1되=약 1.8ℓ), 팥은 1섬 7말 5되로 교환하였다. 팥 1섬에 콩은 1섬 4말, 찧지 않은 조는 1섬 5말을 교환하고, 콩 1섬에 팥은 11말 2되 5홉(1홉=약 0.18ℓ), 찧지 않은 조는 1섬 3말을 교환하였다.
또한 벼 1섬에 콩은 12말을 교환하게 하였다. 핍쌀[직미(稷米)]과 기장쌀[서미(黍米)], 녹두와 팥, 옥수수[직당(稷唐)]와 거친 벼[황조(荒租)], 밀[진맥(眞麥)]과 벼는 같은 양으로 갚게 하였다. 쌀과 좁쌀은 같은 비율이고, 쌀 대신 좁쌀을 징수할 때는 모곡(耗穀)을 징수하지 않았다. 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쌀은 벼와 보리의 2.5배의 가치를 지녔다.
함경도 북관(北關)에서는 호식 외에도 토식(土式)이 통용되었다. 토식에 따르면, 좁쌀 1섬을 찧지 않은 조 · 보리는 2섬으로, 피[직(稷)] · 귀리 · 메밀은 3섬으로 교환하도록 하였다. 이 지역에서 호식의 경우 좁쌀 1섬은 찧지 않은 조 · 보리와는 2섬 7말 5되, 피 · 귀리 · 메밀과는 3섬 11말로 교환되었다. 즉 찧지 않은 조 · 보리의 1말은 토식에서는 좁쌀 5되로, 호식에서는 4되로 교환된다. 피 · 귀리 · 메밀 1되의 경우, 토식에서는 좁쌀 4되이고 호식에서는 약 2.7되가 된다.
호식보다 토식에서 잡곡의 가치를 높게 잡았던 이유는 함경도 지역에서 주로 먹는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에서는 이처럼 2가지 규정이 있었으므로 잡곡을 쌀로 만든다거나 다른 곡식으로 전환할 때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중간 착복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규정과는 달리 실제 운영에서는 곡물 간의 곡물 교환 비율을 무시하고 쌀과 잡곡을 1:1의 비율로 교환하는 단대봉(單代捧)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흉년이 들었을 때 농민들의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행한 제도이나 환곡을 운영하는 지방관과 아전들은 계절 및 지역 간 곡물 가격의 차액으로 발생하는 이득을 노리면서 자주 악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