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청년단 ()

대한독립청년단 신문기사
대한독립청년단 신문기사
근대사
단체
1920년 평안남도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목차
정의
1920년 평안남도 지역에서 조직된 독립운동 단체.
개설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 평안남도 총무 김봉규(金琫圭, 일명 奉圭, 鳳奎)가 평안남도 각군을 돌아다니며 만들었다.

먼저 대동군 건지리에서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을 살펴보면, 1920년 음력 5월대한국민회송화리향촌회(大韓國民會松花里鄕村會) 회장 박응률(朴應律)을 만난 자리에서 김봉규는 향촌회와 같은 완만한 단체보다는 한층 견고한 단체를 만들어야 하루라도 빨리 독립을 이룰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에 박응률이 대한국민회송화리향촌회 회원들과 함께 이 단체를 조직하였다.

기능과 역할

활동 목표는 독립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무기를 배급받아 친일분자를 처단하며, 항일독립전쟁이 개시되면 결사대를 조직해 무력투쟁을 전개하고, 국내에 파견되어 오는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를 하는 것 등이었다. 단장에 박응률, 서기에 김현재(金鉉載), 재무에 황종해(黃宗海)가 선출되었다.

같은 해 9월 새로 임원을 뽑아 단장에 김현재, 부단장에 박응률, 서기에 김재성(金在成), 재무에 황종해, 교통원(交通員)에 조준묵(趙濬默)이 각각 선출되었다. 독립군자금은 평안남도 강동·대동군과 평안북도 철산에서 한인 재산가들로부터 모금하는 한편 단원들로부터도 거두어, 김봉규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냈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각지 청년단과의 연락을 위해 국내에 파견한 요원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안내하여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맹산·영원·덕천의 조직된 대한독립청년단 역시 1920년 11월김봉규가 조직하였으며, 맹산군선유봉 호랑이굴 안에 본부를 두었다. 활동의 중심인물은 안국정(安國鼎)·이원보(李元甫)·나병삼(羅炳三)·나신택(羅信澤)·예준기(芮俊基)·최석모(崔錫模)·나민택(羅敏宅)·방임주(方壬柱)·박병현(朴炳鉉) 등이었다. 단원이 수백 명에 달하였고, 현직 면장·순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인 재산가들로부터 독립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해 호송순사를 총살하고 공금을 탈취, 독립군자금으로 확보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냈다. 또한 일본 경찰을 총살하고 총독부 하급행정기관을 습격하여 응징하였는데, 덕천군 일하면에서는 일본 경찰 3명을, 태극면에서는 1명을 각각 총살하고, 영원군 온창면과 덕천군 동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영원경찰서를 습격하여 일본 경찰을 총살하고 무기를 탈취, 친일분자를 처단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계속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본부인 선유봉 호랑이굴 안에 인쇄기 3대와 1만 2000자의 활자를 두고 유고문(諭告文) 등을 인쇄, 특히 경찰서·군청·면사무소 관리들에게 사형선고서·협박장·경고장을 보내 공포에 떨게 하였다. 직접 관리를 만나 경고하여 사직하는 관리도 있었다.

한편, 이원보는 활동중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어 피신할 수 없게 되자, 동지들을 보호하고 적으로부터 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결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 등으로 영원·맹산·덕천 3군은 독립의 분위기가 팽배하여 하루도 조용하게 지나간 날이 없었다고 한다. 대동군과 영원·맹산·덕천의 두 단체는 각각 독립된 상태로서 활동하였다.

1921년 봄 일본 경찰에 활동이 드러나, 대동군 대한독립청년단은 김현재 등 일부 단원들이 피신하지 못하고 잡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영원·맹산·덕천의 대한독립청년단도 같은 해 6월 수백 명의 단원이 잡혀 이 중 52명은 불기소 방면되고 38명은 기소되었는데, 이 가운데 19명은 사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참고문헌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집필자
강진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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