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목판본. 1809년(순조 9) 후손 용(鎔)·상원(尙元)·상직(尙直) 등이 유고를 모아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굉(金㙆)의 서문과 권말에 정위(鄭煒)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등에 있다.
건(乾)·곤(坤) 2책 중 건책은 권1에 시 68수, 부(賦) 3편, 권2에 소 3편, 서(書) 3편, 봉안문 1편, 축문 1편, 제문 5편, 명 1편, 묘갈명 2편이 실려 있다. 곤책은 연보와 부록으로 묘갈명·행장·경제가첩후지(敬題家牒後識)·서행장후발(書行狀後跋)·서유권후발(書遺卷後跋)·가장초(家狀草)·제문·승암서원상량문(勝巖書院上樑文)·승암서원봉안문·상향축(常享祝)·승암서원이건시고유문(勝巖書院移時告由文)·봉안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문집의 시문을 통하여 저자가 일찍부터 고응척(高應陟)·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의 영향을 받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면서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고 의리에 충실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스승 정구가 무고(誣告)를 당한 데 대하여 논변한 「변한강선생피무소(辨寒岡先生被誣疏)」와 「재소(再疏)」, 계축옥사로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마음 속에 품은 생각을 읊은 시 「객중추회(客中秋懷)」가 실려 있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71세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규합하여 남한산성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강화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지은 부 「원답동해(願踏東海)」 등은 문장이 꾸밈이 없이 늠름하며, 의리가 충만한 글로, 저자의 충의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