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편찬연대 및 편자 미상이나, 영조·정조 때의 인명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후인 듯하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이 책은 『동국명신록(東國名臣錄)』·『명현록(名賢錄)』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인물에 대한 정리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 내용은 필사본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고 또 잘못된 기록이 있으며, 체재는 『명현록』이 성씨별·본관별·시대별로 구성된 데 비해, 이 책은 권씨(權氏)와 신씨(申氏) 외에는 본관별로 나누지 않고 성씨별로만 기재되어 있다.
먼저 「대성전배향차제위(大成殿配享次第位)」를, 다음으로 「계성사(啓聖祠)」·「사육신」·「동방오현(東方五賢)」·「생육신」·「서원」·「삼신(三臣)」·「삼절(三節)」·「동서남북청탁노소론(東西南北淸濁老少論)」을 차례로 기록하고, 끝으로 성씨별로 우리나라의 인물을 나열하였다.
「대성전배향차제위」는 문묘에 배향된 인물을 배위별(配位別)로 기록한 것으로, 공자를 비롯해 4성(聖)·11철(哲) 그리고 동서(東西) 양무(兩廡)에 공자의 70제자를 포함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명현 129위 등 총 145위를 기록하였다. 이것은 현재 문묘에 공자를 비롯해 4성·10철·송6현(宋六賢) 그리고 동서 양무에 112위 등 133위가 배향되어 있는 것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764년(영조 40)에 배향된 박세채(朴世采)가 기록되어 있는가 하면, 김석주(金錫胄)의 건의에 의해 1682년(숙종 8)에 폄출(貶黜)된 공백료(公伯寮)·순황(荀況)·마융(馬融)·하휴(何休)·가규(賈逵)·왕숙(王肅)·왕필(王弼)·두예(杜預)·오징(吳澄)·신당(申黨) 등의 이름이 그대로 있고, 송시열(宋時烈)의 상소에 의해 1714년에 송6현을 10철과 나란히 동서종향(東西從享)으로 승배(陞配)했는데 그대로 동·서무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헌(趙憲)과 김집(金集)을 빼고 윤증(尹拯)을 넣는 등 일정한 기준이 없다.
다음으로 문묘 안에 있는 계성사에 모셔져 있는 공자·안자(顔子)·자사(子思)·증자(曾子)·숙량흘(叔梁紇)·안로(顔路)·증점(曾點)·공리(孔鯉)·무적(無赤)을, 「동방오현」에는 정여창(鄭汝昌)·김굉필(金宏弼)·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조광조(趙光祖)를, 「서원」에는 안자동(顔子洞)·정자동(程子洞)·주자동(朱子洞)을, 「삼신」에는 1689년 기사환국 때에 왕후 민씨(閔氏)의 폐위를 반대한 박태보(朴泰輔)·오두인(吳斗寅)·이세화(李世華)를, 「삼절」에는 병자호란 때에 척화를 주장한 홍익한(洪翼漢)·오달제(吳達濟)·윤집(尹集) 등 삼학사(三學士)를, 「동서남북청탁노소론」에는 동인·서인·북인·대북·소북·대론·소론·남인·청남·탁남 순으로 인명을 기록하였다.
끝으로 본록인 「동국명현록」에는 이씨에서부터 평양 선우씨까지 71성 1,900여인을 나열했는데, 대부분 성씨별로 되어 있으나 일부는 본관을 밝혔다. 권씨·신씨는 본관별로 되어 있으며, 호(號)와 인명 아래에 주(註)로 본관, 가계(家系), 학통(學統), 과거, 벼슬, 학문적 경향, 문집의 유무, 시호, 문묘와 서원의 배향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동국명신록』·『명현록』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인물을 일목요연하게 고찰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