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심검당은 대광보전(大光寶殿)의 동남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언제 지어졌는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다만 1797년(정조 21)과 1856년(철종 7)에 각각 중수하고, 1909년에 기와를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배치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있는 ‘ㄷ’자 형인데, 양쪽으로 날개처럼 방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한 쪽은 겹집이고, 다른 한 쪽은 홑집 형식이다.
이러한 건물은 대개 양쪽 평면을 거의 비슷하게 만드는데, 후기에 중수하면서 원형이 많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각 방의 배치를 보면, 가운데 큰 대중방을 두고 그 남쪽에 부엌을 배치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작은 방들을 만들어 두었다. 대중방 남측 면에는 4칸의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사괴석(四塊石)으로 기단을 만들고 초석은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다. 기둥은 대중방 쪽에는 두리기둥을, 후면에는 네모기둥을 쓰고, 지붕 모양은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을 혼용하여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고방은 ‘一’자형 평면이지만 심검당 동측에 위치하여 안마당을 막고 있어 심검당과 함께 보면 ‘口’자집 배치가 된다. 마치 규모가 큰 조선시대 양반집 같은 모습이다.
이 고방은 2층구조로, 아래층은 흙바닥이고 위층은 마루바닥으로 꾸몄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사괴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초석은 자연석 덤벙주초이다. 아래층 기둥은 두리기둥을 세우고 상층은 네모기둥을 세웠다.
대개 중층건물은 위아래 기둥을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데, 여기서는 아래 위층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아래층의 문은 심검당 안마당쪽으로 내고 벽은 흙을 바른 심벽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위층의 벽은 나무로 막은 판벽이다. 이 고방도 심검당과 같은 시기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