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 1989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고산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道禪國師)가 창건한 절로 전해 오는데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고산사 대웅전 수리 때 발견된 상량문에 ‘법장산 법장사(法藏寺)’라는 기록이 있어 한때 이 사찰의 이름이 법장사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1636년(인조 14)에 수등대사(水登大師)가 중수한 것으로, 지붕 끝에 서까래를 하나 더 올려놓은 겹처마이다. 기단은 돌을 잘 다듬어 서로 줄을 잘 맞추어 바른층쌓기로 하고, 초석은 자연석을 이용한 덤벙주초이다. 원래의 기단은 막돌로 만든 것이었으나 근래에 보수하면서 지금과 같이 만들었다.
기둥은 원주로 아래가 굵고 위가 가는 민흘림기둥이다. 기둥 상부에는 다포계의 전형적인 구조인 창방(昌枋)과 평방(平枋)을 걸고 그 위에 다포식 공포를 얹었다. 내부에 고주가 없는 무고주 5량집이다.
대들보 양측에 동자기둥(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을 세우고 중보를 올렸는데, 양 동자기둥 사이에 중보를 받치는 사람모양으로 조각한 기둥을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이 사람모양 동자기둥의 표정을 보면, 그렇게 무거운 중보를 머리에 받치고 있어도 무거운 표정이 아니라 환하게 웃고 있다.
중보 위의 천장은 우물반자로 만들어 서까래가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반자에는 단청을 하였다. 정면의 문은 모두 띠살문으로 달았는데 가운데칸에는 3폭, 양쪽은 2폭으로 하였다. 가운데 것은 3분합 띠살문, 양 측간은 분합 띠살문이다. 그리고 우측 벽면에 조그만 띠살문을 하나 달아 평상시 출입하도록 하고, 그 밖에는 모두 벽으로 막아 버렸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건물의 주요 구조 부재를 초다듬으로 하고, 부분적으로 장식조각이 만들어지는 특징이 있는데 이 건물에서 그러한 조선 후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