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는 말을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이다. 한국의 말 그림의 기원은 쌍영총의 「기마인물도」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말 그림이 많이 그려졌지만 전래된 것은 희귀하다. 조선 후기에 말 그림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문인화가 윤두서이다. 그는 말만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말 그림을 그린 유일한 말 전문화가이다. 조선 말기의 화가 장승업도 말 그림 수작을 다수 남겼다. 말 특유의 동적이며 활기찬 모습, 다채로운 형태를 잘 구현하였다. 현대에는 김기창이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말 그림으로 마도의 맥을 이었다.
말 그림은 후기 구석기 시대의 라스코 동굴 벽화로 기원이 올라갈 정도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말은 라스코 동굴 벽화에 그려진 동물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구석기 벽화 속의 말 그림은 수렵의 대상을 표현한 것으로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중국의 경우 넓은 영토와 긴 역사 탓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은 말 그림이 전해진다. 한대(漢代)의 벽화에서부터 등장하는 말 그림은 당대(唐代)에 전성기를 맞아 조패(曹覇), 한간(韓幹)과 같은 저명한 말 전문 화가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이민족 왕조였던 요(遼), 금(金), 원(元), 청(淸)의 경우 유목민족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자연스레 많은 말 그림이 제작되었던 시기였고, 한족(漢族) 왕조인 명대(明代)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그려졌다.
북송대(北宋代)의 이공린(李公麟)과 원대의 조맹부(趙孟頫), 청대의 낭세녕(郎世寧), 근대의 서비홍(徐悲鴻) 등은 동아시아 말 그림의 수준을 끌어올린 대표적 화가들이다. 이러한 중국의 말 그림은 한국 말 그림의 직간접적 자양분이 되었다.
한국의 말 그림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안악3호분이나 덕흥리 고분 등에는 묘주(墓主)의 권력과 위세를 드러내주는 군마(軍馬)들이 다수 등장한다. 쌍영총의 「기마인물도」 잔편은 정확한 말의 외모와 동작의 표현에서 묘사력의 발전을 잘 보여준다.
황남대총 출토 칠기 잔편의 「우마도(牛馬圖)」와 천마총 출토 「천마도(天馬圖)」는 실루엣 풍의 단순한 묘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의 모습과 동세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어 신라의 말 그림 수준이 고구려 못지않았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에는 기록을 통해 많은 말 그림들이 그려졌음을 알 수 있지만, 전래된 말 그림이 희귀하여 그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조선 중기의 이경윤(李慶胤), 이영윤(李英胤), 이징(李澄), 김식(金埴) 등의 문인화가들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그림들과, 필자미상의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조선 후기 말 그림을 가장 즐겨 그려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이다. 그는 「유하백마도(柳下白馬圖)」(해남윤씨종가 소장)에서 보이듯 말만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적인 말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유일한 말 전문화가라고 할 만하다. 윤두서는 실제 말에 대한 사생을 통해 자기세계를 완성하였다. 윤두서에 의해 그림 소재로 부각된 말은 윤덕희(尹德熙), 조영석(趙榮祏), 심사정(沈師正)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조선 말기의 장승업은 말 그림에 있어서도 수작을 다수 남겼다. 장승업은 한, 두 마리 말만을 조촐하게 등장시켰던 면모를 일신시켜 인물과 말이 다수 등장하는 「군마도」와 같은 그림을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 말들의 화면에서의 연결이 자연스럽고, 동작도 어색하지 않게 잘 표현되었다.
그는 윤두서와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말 그림 화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림의 시적 분위기와 서정성은 윤두서에 비해 부족하지만 말 특유의 동적이며 활기찬 모습, 다채로운 형태를 구현한 시각적 효과는 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장승업의 영향은 안중식(安中植), 조석진(趙錫晉), 김규진(金圭鎭)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에는 김기창(金基昶)이 역동적으로 질주하는 말 그림을 그림으로써 맥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