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총 ()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방무덤. 석실분.
이칭
이칭
노서동 제133호분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돌방무덤. 석실분.
개설

쌍상총(雙床塚)의 서북방 50m 거리에 있는 표형분(瓢形墳)인 제134호분의 서쪽에 연접되어 있다. 원래 경주 노서동 제133호분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1920년대의 조사에서 말뼈와 마구가 발견되어 마총(馬塚)으로 명명되었다. 그 뒤 1953년 8월 국립박물관김원룡(金元龍)에 의하여 재조사되었다.

내용

봉토는 높이가 노면에서 357㎝, 논의 수면에서 517㎝이고, 평면 길이가 동서·남북 각각 340㎝이다. 서남쪽의 흙은 거의 깎여 없어져 겉보기에는 작은 고분으로 보이지만 내부의 돌방구조로 볼 때, 이웃해 있는 쌍상총과 거의 같은 봉토 크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구조에 있어서는 널방〔玄室〕이 정남을 정면으로 하고, 그 남벽에 널문〔羨門〕이 있다. 동서벽은 300㎝, 남북벽이 324㎝로서 거의 정방형이다. 높이는 바닥에서 약 370㎝이다.

널방의 네 벽은 장방형의 큰 자연석으로 쌓아올렸으며 더러는 규격을 맞추기 위해 인공이 가해진 것도 있다. 동벽의 예를 보면 매 열마다 돌의 두께가 위 11열에서는 약 20㎝, 아래 2열은 40㎝로 정연한 13열로 되어 있다.

천장돌은 두께가 약 3.5㎝이고 천장에 보이는 면만이 약 2㎡의 1장으로 된 돌을 썼다. 천장, 네 벽, 널길은 모두 두껍게 회칠을 하였다.

널방의 남벽 중앙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너비 1.1m, 높이 1.2m의 널문이 있다. 이맛돌〔楣石〕은 두께가 약 50㎝, 넓이 약 1.2㎡ 가량의 큰 판석으로 되어 있다. 널길의 양쪽도 널방 벽과 같이 돌로 쌓아 표면에는 회칠을 하였다.

널길은 밖으로 나가면서 조금씩 벌어져 이맛돌의 길이만큼 가서는 폭이 약 20㎝쯤 넓어졌다. 여기서 높이와 폭이 커져서 고구려와 백제의 돌방무덤에서 보이는 2단 널길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천장은 20㎝가 높아지고 넓이는 좌우로 각각 20㎝씩 넓어졌다.

넓어진 널길의 양쪽에 전단(前段)의 널방쪽 널길의 끝돌에서 약 15㎝ 가량 되는 곳에 나이테〔木理〕가 붙어 있다. 특히, 서벽에는 약 5㎝의 너비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점이 나무조각〔木片〕이 붙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나무조각이 없는 부분이라도 석회가 일직선으로 움푹하게 구획을 짓고 있어 원래 위에서 아래로 목판이 붙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나무문짝〔木扉〕임에 틀림없다.

널길의 천장돌에는 나무문짝을 달기 위한 특별한 시설은 찾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테가 회칠 속에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문을 여닫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고, 여러 장의 두꺼운 목판으로 널방문을 막은 뒤 밖에서 석회를 발라 고정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의의와 평가

마총의 조성연대는 확실한 자료가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고 널문에 나무문짝을 사용한 것은 통구(通溝)지방의 고구려고분인 무용총(舞踊塚)에서 보이므로 통일신라 초기로 보인다. 무덤의 피장자는 주변의 대형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으로 보아 신라 중고기 왕족의 후예로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경주노서리 쌍상총·마총·138호분 조사보고서』(김재원·김원룡, 을유문화사, 1955)
집필자
김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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