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덕사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679년(문무왕 19) 당나라가 침입하자 사천왕사를 짓고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으로 그들을 물리치게 되었다. 그 소문이 당나라로 전해지자 신라에서는 당나라 왕실을 위해서 사천왕사를 지은 것이라 변명하였다.
이에 당나라에서 그 허실을 알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그 때 신라에서 사천왕사를 그들에게 보이지 않고 당나라 사신을 속이기 위하여 망덕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 692년(효소왕 1) 절을 정식으로 다시 짓고 낙성재를 베풀었다.
755년(경덕왕 14) 이 탑이 흔들렸는데 그해에 중국에서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신라 사람들은 “당실(唐室)을 위하여 지은 절이니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이 절은 황룡사(皇龍寺) · 사천왕사 · 황복사(皇福寺) 등과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이 절에는 효소왕이 재를 베풀 때 진신석가(眞身釋迦)를 알아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공양한 뒤 진신석가로부터 조롱을 당한 설화와, 이 절에서 육백부 『반야경』을 사경(寫經)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선율(善律)이 명부(冥府)에 갔다가 경의 완성을 위하여 환생한 설화 등이 전하고 있으나 그 뒤의 사찰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동탑지(東塔址)와 서탑지(西塔址)가 남아 있어 절의 규모를 알 수 있으며 이 밖에도 절터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