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산 망덕사 ( )

목차
관련 정보
경주 망덕사지 전경
경주 망덕사지 전경
불교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狼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망덕사지(慶州 望德寺址)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956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狼山)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
내용

망덕사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679년(문무왕 19) 당나라가 침입하자 사천왕사를 짓고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으로 그들을 물리치게 되었다. 그 소문이 당나라로 전해지자 신라에서는 당나라 왕실을 위해서 사천왕사를 지은 것이라 변명하였다.

이에 당나라에서 그 허실을 알기 위하여 사신을 파견하였는데, 그 때 신라에서 사천왕사를 그들에게 보이지 않고 당나라 사신을 속이기 위하여 망덕사를 창건하였다. 그 뒤 692년(효소왕 1) 절을 정식으로 다시 짓고 낙성재를 베풀었다.

755년(경덕왕 14) 이 탑이 흔들렸는데 그해에 중국에서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났으므로, 신라 사람들은 “당실(唐室)을 위하여 지은 절이니 마땅히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당시 이 절은 황룡사(皇龍寺) · 사천왕사 · 황복사(皇福寺) 등과 함께 경주의 중요한 사찰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이 절에는 효소왕이 재를 베풀 때 진신석가(眞身釋迦)를 알아보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공양한 뒤 진신석가로부터 조롱을 당한 설화와, 이 절에서 육백부 『반야경』을 사경(寫經)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선율(善律)이 명부(冥府)에 갔다가 경의 완성을 위하여 환생한 설화 등이 전하고 있으나 그 뒤의 사찰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이곳에는 동탑지(東塔址)와 서탑지(西塔址)가 남아 있어 절의 규모를 알 수 있으며 이 밖에도 절터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전통사찰총서』 15(사찰문화연구원, 2000)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한국의 사찰』 3-신라의 폐사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