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국신사(國信寺)라 하였으며, 국신사(國神寺)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최치원(崔致遠)은 이곳에서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편찬하였다.
고려시대 국사 원명(圓明)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의 전화로 폐허가 된 것을 1873년(고종 10)에 춘봉(春峯)이 중창한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려 말에는 왜병 300여 기(騎)가 성을 함락한 후 이 절에 주둔하였는데, 병마사 유실(柳實)이 격퇴하였다고 하며, 당시에는 건물과 암자가 즐비했던 대찰이었다고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68년 보물로 지정된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 산신각 · 요사채 등이 있다. 주요 문화유산으로는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귀신사 석탑과 귀신사 부도, 귀신사 석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삼층석탑은 높이 4.5m의 화강암재 석탑으로,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선이 정밀하고 옥개석의 곡선이 거의 평행을 이루면서도 신라시대의 미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석탑과 통일된 조각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부도는 정교한 조각의 예술성을 보이고 있으며, 높이 2.5m이다.
또 석수는 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男根) 같은 석주가 꽂혀 있고 도약 하려는 듯한 석수의 모습에는 당당한 위용이 엿보인다. 석수나 남근은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높이 1.65m, 너비 1.65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