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김제 귀신사 대적광전에 봉안되어 있는 소조삼불좌상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협시한 삼불로 조선시대 약 1620년대 중반경에 제작되었다. 각각 중방(中方)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주존 비로자나불, 동방(東方) 만월세계(滿月世界)의 주존 약사불, 서방(西方)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주존 아미타불을 나타내고 있다.
이 삼불상에 대한 복장발원문이나 조성기 등 1차 사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이와 관련된 유력한 2건의 2차 사료가 남아 있어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귀신사에 보관중인 「복장발원문」이다. 원래 나한전의 삼존불상 또는 16나한상에 납입되었던 복장발원문이었으나 어느 존상에서 발견되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두 번째는 조선 후기 고승인 자수무경(子秀無竟)의 문집인 『무경집(無竟集)』에 들어있는 「전주모악산귀신사사적사인(全州母岳山歸信寺事蹟詞引)」이다.
귀신사 영산전 불상의 「복장발원문」에는 귀신사의 법당(대적광전)을 재건한 후에 덕기(德奇)스님이 삼존상을 안치하였다고 하였으며, 귀신사 사적에서는 천계갑자년(天啓甲子年, 1624년)에 옛 터전을 옮겨 새로 터를 마련하였는데, 먼저 법전(法殿)을 세웠다고 하였다. 즉, 1624년 귀신사를 재건할 당시 주불전인 대적광전을 가장 먼저 지었으며, 재건하자 곧 불상을 안치하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귀신사 대적광전의 소조삼불좌상은 1624년에서 나한전에 삼세불상이 봉안된 1633년 사이에 제작되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재건 초기에 제작되었다면 1624년에서 오래지 않은 늦어도 1620년대 중반 경에는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귀신사 불상들은 매우 가늘고 긴 몸매를 갖고 있다. 상반신은 길고 하반신은 두께가 낮고 두 무릎 사이의 폭이 넓다. 하반신 두께가 낮고 무릎의 폭이 넓다는 것은 다리가 얇고 길다는 것이므로, 상하반신 모두 좁고 얇으며 긴 것이다. 얼굴도 폭이 좁으면서 길고, 양감이 없어 밋밋하다. 어깨도 좁으며 입의 가로 길이가 코 폭 정도와 같거나 비슷한 정도로 좁다. 옷주름은 예리하며 옷주름 사이가 좁고 밀집되어 있고 그 수도 많다. 또한 상반신 좌측면 왼쪽 어깨 아래로 늘어진 옷주름은 팔꿈치까지 길게 늘어져 있으며, 좌우로 나뉘어져 흘러내린 형태이다. 양 어깨와 무릎에는 각각 3줄과 2줄의 양각선 주름이 대칭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왼쪽 어깨에서 팔을 향하여 늘어져 있는 옷주름은 ‘U’자형을 띠고 있다.
귀신사 삼불상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는 불상은 귀신사 명부전의 소조지장보살좌상, 장성(長城) 백양사(白羊寺) 목조아미타불좌상, 그리고 1633년에 제작된 고창(高敞) 선운사(禪雲寺) 소조삼불좌상이 있다. 특히 선운사 삼불상에서는 각각 법해(法海)와 무염(無染)이 수조각승으로 기록된 2건의 묵서 조성기가 대좌에서 발견되었다. 현재 무염이 수조각승이고 법해는 도금을 담당하였다는 견해와 법해가 수조각승이었다는 견해로 나뉘어져 있는데,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향후 또 다른 자료의 출현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