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염파는 유파의 수장인 무염을 비롯하여 17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80여 명의 조각승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2회 이상 함께 작업한 조각승들만 해도 도우(道祐) · 성수(性修) · 쌍조(雙照) · 신회(信會) · 해심(海心) · 덕명(德明) · 운일(雲日) · 성관(性寬) · 신견(信堅) · 승추(勝秋) · 민기(敏機) · 삼우(三愚) · 도균(道均) · 묘관(妙寬) · 신일(信日) · 승조(勝照) · 지문(智文) · 명조(明照) · 일안(一安) · 경성(敬聖) · 영택(靈澤) · 처인(處仁) · 학매(學梅) 등 24명에 이르는 초대형 조각승 집단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조각승 중에서 수조각승으로서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은 현재 도우와 해심 두 사람만이 알려져 있으나, 자신의 작품을 조성한 수조각승은 앞으로의 연구와 조사를 통해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무염의 제자 가운데 가장 윗자리에 있었던 도우는 나중에 무염파 조각승들과 관계를 끊고 희장파 조각승들과 함께 불상을 조성하였기 때문에 무염파를 계승한 조각승은 도우의 후배인 해심이라 할 수 있다. 해심은 1633년 고창 선운사 목조삼방불좌상의 조성에서부터 1648년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삼존불좌상, 1654년 영광 불갑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의 조성에 이르기까지 무염의 휘하에서 거의 모든 불사에 참여한 무염파의 대표적인 조각승이었다. 1653년에 제작된 고창 문수사 명부전의 목조지장보살좌상이 그가 수조각승으로서 처음 제작한 작품이라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선 시기인 1651년에 조성된 속초 신흥사의 아미타삼존상도 그 양식으로 보아 해심이 주도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상원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삼세불좌상을 무염파의 2대 수조각승 해심이 제작한 불상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얼굴 · 몸체 · 옷 등의 표현에 근거한다. 이 삼존불상은 모두 얼굴이 길고 턱은 둥글며 하반신은 두껍고 무릎 사이의 폭이 넓은 특징을 갖고 있다. 오른쪽 가슴을 가려 주는 대의 자락은 비스듬히 사선으로 흘러내렸으며, 그중 한 자락이 별도로 아래를 향해 흘러내렸다. 하반신 옷주름의 중앙에 위치한 폭넓은 띠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얼굴 · 몸체 · 옷 표현의 특징들은 1653년 조각승 해심에 의하여 조각되어 고창 문수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의 특징과 거의 유사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문수사 대웅전의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나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불좌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해심 작품의 특징이라 판단된다. 결국 상원사의 삼존불은 해심이 제작한 기타의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1651년에 제작된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이나, 1653년에 제작된 고창 문수사 지장보살좌상보다 하반신에 대한 강조가 약간 줄어들었고, 옷주름도 성글어져 있는데 이러한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상원사의 삼존불은 1650년대 중후반에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