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의 협시불로 이루어진 삼존불이다. 1561년 소조로 제작된 우협시불과 달리 석가모니불과 좌협시불은 1648년에 나무로 조성되었다.
목조좌대에 쓰인 묵서를 통해 우협시인 소조불좌상은 1561년 조각승 태보(太宝)와 사담(思淡)이 조성하였고 1648년에 본존과 좌협시인 약사불을 조성할 때 중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 좌협시 약사불의 대좌에서 발견된 1648년(인조 26)의 조성기와 1778년(정조 2)의 중수기에 의하면, 석가모니불과 약사불은 1648년(인조 26)에 수조각승 승일(勝日)을 비롯한 성조(性照), 계찬(戒贊), 지안(智眼), 경옥(敬玉), 천학(天學), 계명(戒明) 등 7명의 조각승들에 의해 조성되었고, 1722년(정조 2) 태원(太元) 등에 의해 개금되었으며, 1778년(정조 2) 계심(戒心) 등에 의해 중수되었다. 조성기에 의하면, 1648년(인조 26) 당시에는 천개산(天蓋山)의 쌍계사(雙溪寺)에 봉안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로 보면 쌍계사는 정수사(淨水寺)의 옛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을 조성한 승일은 17세기 중반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등 전국을 대상으로 조상 활동을 펼친 조각승이었다. 승일은 1640∼1670년대에 자신의 독특한 작품으로 많은 불상들을 제작하며 일군의 제자들을 거느린 유파의 수장으로 활동하였고, 그의 제자로 추정되는 성조(性照)와 삼응(三應)은 승일의 작풍을 따라 승일파를 계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목조 삼세불좌상은 그의 독자적인 작풍이 발현된 현존 첫 작품이다. 정수사의 석가불과 약사불은 승일에 의해 1646년(인조 24)에 조성된 구례 천은사 수도암(修道庵)의 아미타상과 대세지상의 얼굴, 체형, 옷 주름 등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갖고 있다. 얼굴은 상하로 길쭉하였던 수도암 불상들과 달리 턱이 각지고 폭이 넓은 얼굴로 바뀌었으며, 상체의 폭이 넓어져 당당한 모습이다. 귀의 형태는 삼각와 주변에 ‘y’ 모양이 깊게 조각되었고, 이병(耳屛)도 돌기처럼 튀어나온 승일 불상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또한 하반신의 옷 주름에도 승일의 불상 전체를 대표하는 특징적인 표현이 나타나 있다. 중앙에 폭넓고 좌우로 굽은 두 개의 옷 주름이 자리하고 좌우로 한두 줄의 음각선이 양 무릎으로 뻗쳐 나가는 형태가 그것이다. 여기에 간혹 정수사 약사상처럼 왼발 정강이 위로 끝이 예리한 대의의 모서리 자락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고, 정수사 석가상처럼 오른쪽 가슴에 끝이 예리한 대의 자락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