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하고 있는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주존인 아미타불은 시무외인을 지은 오른손을 정강이 바로 위로 낮게 대었고, 좌우 보살상은 바깥쪽의 팔을 높이 들어 전체적으로 좌우대칭을 기하였다. 이런 기법은 청헌에게서 시작하여 승일·응혜·희장 등 청헌파 조각승들이 주로 사용하였던 수인 형식이다. 머리의 앞뒤 깊이가 매우 두껍고 신체가 건장한 점도 청헌파 특히 희장파 불상 양식과 같다. 오른쪽 가슴의 대의 자락이 약간 아래로 튀어나와 있으며, 두 다리 사이에는 중앙에 폭이 넓은 옷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정연하고 대칭으로 옷주름들이 배치되어 있는 점도 희장풍과 유사하다. 다만, 얼굴은 희장에 비하여 턱이 각져 정사각형에 가깝고, 하반신의 슬폭이 넓어 안정성이 높아진 것은 도우의 특징으로 판단된다. 조각승 도우는 1633년 고창 선운사 대웅전의 목조삼방불좌상을 조성하는 불사에서 법해, 무염에 이은 3위 조각승으로 참여하였으며, 1635년 영광 불갑사 대웅전의 목조삼방불좌상 조성 시에는 수조각승 무염, 차조각승 승일에 이어 3위 조각승으로 참여하였고, 1651년 속초 신흥사 극락전의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조성 시에는 무염을 이은 차조각승으로 참여하였다. 즉, 도우는 17세기 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조각승 유파인 무염파에서 차조각승으로까지 올랐던 대표적 조각승이다. 그러나 그가 수조각승으로서 조성한 불상들은 무염파의 작풍과 상이하며, 또다른 조각승 유파인 희장파의 작풍을 따르고 있는데 이는 그의 수조각승 시기 불사에 희장파 조각승들이 많이 참여한 사실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1655년에 수조각승 도우를 비롯하여 쌍조·경옥·경신·혜청·도철·옥순 등 7인의 조각승에 의하여 아미타삼존상이 조성되어 성주(현 대구시 달성군)의 용연사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아울러 이 삼존불이 용연사에서 조성된 후 자리를 옮기지 않고 지금까지 봉안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각승 중에 경옥·경신·옥순 등은 희장파와 관련이 있는 조각승이며 쌍조는 무염파의 주요 조각승인데 가까이에 있는 달성군 운흥사 삼존상과 동일하게 희장파 조각승들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불상의 양식 요소와 함께 조각승들의 인적 구성에서도 희장파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