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수다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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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조각
유물
국가유산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아미타여래좌상.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龜尾 水多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분류
유물/불교조각/목조/불상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02년 04월 15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구미시 수다사길 183 (무을면, 수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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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수다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아미타여래좌상.
내용

이 아미타여래상은 원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상이었음이 구미 원각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의 「복장발원문」에 의해 밝혀졌다. 원래 수다사에는 이 불상을 포함해 삼존불이 모셔져 있었는데, 대세지보살상은 선산읍 원각사에 옮겨져 봉안되었고 관음보살상은 대구의 서봉암으로 이안되었다고 하나 현재 그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수다사 아미타불상의 가장 큰 특징은 상의 앞뒤 두께를 두껍게 하여 입체적으로 표현하였고 안정감을 높인 점이다. 앞뒤 두께를 두껍게 표현하는 기법은 불상의 머리와 양 무릎에도 적용되어,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준다. 얼굴은 발제선(髮際線)이 넓고 턱은 상대적으로 좁지만 거의 정방형에 가까운 모습이며, 코와 입 주위가 우묵하게 파여 뺨과 턱의 볼륨감이 강조되었고, 표정이 역동적이고 밝다. 몸에 비해 약간 크게 묘사된 손에는 손가락 하나하나의 둥근 입체감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었다. 양감이 잘 표현된 얼굴과 달리 가슴은 편평하고 간략하게 묘사되었으며, 다리와 팔에 걸쳐진 대의(大衣)와 부견의(覆肩衣) 표현도 비교적 단순하고 평면적이다. 귀 상부의 삼각와에 강한 양각으로 ‘y’ 자형 모양을 나타내어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 희장(熙藏)은 1639년부터 1666년까지 약 30년간 작품 활동을 펼친 조각승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청헌(淸憲)과 승일(勝日)로부터 수련을 받았으며, 수련기 동안 습득한 청헌과 승일의 작풍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만든 불상 속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희장은 스승들의 작풍을 모방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독창성을 더해 전혀 새로운 작풍을 창조하였다. 그의 휘하에서 함께 작업에 참여한 조각승들은 현재 알려진 인원만도 50여 명에 이른다. 스승의 작풍을 소화해 자신만의 독특한 작풍을 창안하였고, 자신의 작풍을 따르는 일군의 조각가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작품을 제작한 희장과 그 제자들을 희장파라 부를 수 있다. 이들이 제작한 작품들은 꽤 많아서 지금까지 발견된 불보살상만 하여도 50여 점에 이른다. 복장발원문에 의해 제작 연대와 조각승의 이름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는 사례 이외에도 양식 분석을 통해서 희장 또는 희장파가 조성한 작품으로 추정한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현존하는 희장파의 작품은 모두 목조각품으로 확인되었는데, 중량감 있고 단정하며 양감이 풍부한 얼굴과 몸집, 깊이가 얕고 평면적이며 간략하게 표현된 옷주름 등이 특징으로 거론된다. 몸체를 재현하는 데 있어 측면의 두께를 매우 두껍게 하여 불상의 안정감과 실재감을 극대화한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또한, 희장풍의 불상 옷주름에서 ①오른쪽 가슴과 어깨에 걸쳐진 부분, ②왼쪽 정강이, ③두 다리 사이 등 세 부분에 나타난 옷주름은, 1649년에서 1666년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기년명 불상에 모두 같은 형태로 나타나 있으며, 희장의 제자인 보해(寶海)가 제작한 1680년대의 불상에서도 그대로 계승되는데, 희장파 조각의 공통적인 옷주름 표현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17세기 조각승 희장과 희장파의 조상」(송은석, 『태동고전연구』22, 2006)
집필자
송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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