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심광사에 봉안되어 있는 이 석가모니여래좌상은 1931년 심광사 창건 이후 다른 절에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의 일반적인 불상처럼 두꺼운 가사 속에 몸체가 최소한으로 드러나 있다. 오른손을 다리 아래로 뻗고 손등을 위로 하여 손가락을 아래로 향한 항마촉지인을 결한 것으로 보아 석가모니가 성도하는 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상체는 하체에 비해 길고, 앞뒤가 비교적 두껍고 넓다. 얼굴도 몸체에 비해 크고 길며, 얼굴의 발제선은 일직선이다. 코와 입 주위는 우묵하게 들어가도록 하여 입체를 표현하였다. 승기지·부견의·대의로 이루어진 두꺼운 가사에는 오른쪽 가슴, 왼쪽 무릎, 그리고 두 다리 사이 등에 조각가의 특징적 표현이 나타나 있다. 즉, 오른쪽 가슴에는 끝이 뾰족하게 장식된 옷자락이 늘어져 있으며, 왼쪽 정강이 역시 끝이 뾰족하게 마무리된 옷자락이 나타나 있다. 두 다리 사이에는 끝이 넓게 벌어진 넓적한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들 옷자락 표현은 모두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희장(熙藏) 또는 희장파(熙藏派) 조각승들이 즐겨 사용하던 표현법이다. 앞뒤가 두꺼운 몸체 표현도 역시 희장파의 작품이 갖는 특징적 요소이다. 그러나 몸의 두께가 1660년대의 작품들보다 얇은 편이며, 키가 커지고 얼굴이 길어진 사실은 이 불상이 1660년대 이전에 제작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케 한다. 옷주름의 굴곡도 낮고 주름 사이도 촘촘한 편인데, 양감과 입체감이 극대화되었던 1650~1660년대의 희장파 작품들보다는 전반적으로 편평화가 진행된 작품이다. 입술 양쪽 끝을 눌러 우묵하게 들어가고 웃음기가 사라진 표현도 1660년대의 희장파 불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심광사 석가모니불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는 희장파 작품으로는 상주 북장사 극락보전의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