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영화사(嶺南映화社) 제작으로 1936년 조선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문예봉(文藝峰)·김소영(金素英)·독은기(獨銀麒) 등이 출연하였다.
이 작품은 이규환이 일본인의 돈으로 제작하려고, 일본 신코(新興)키네마촬영소 감독부 조감독 시절에 알게 된 촬영기사 후지이(藤井)에게 생필름 제공과 촬영 등의 기술을 합작하여 제작할 것을 제의하여 만들어졌다.
합작하여 제작한 다음 양쪽이 각기 자기 나라에서의 흥행권을 가지기로 하였는데, 일본에서 후지이가 올 때 닛카쓰촬영소(日活撮影所)의 후카가와(深川)라는 감독까지 따라와 제작에 관여하려 하였다.
나중에 후카가와는 이규환과 의견이 맞지 않아 돌아가고, 촬영이 끝난 다음 후지이는 1만4000여 척의 필름을 현상하기 위하여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이규환과의 상의도 없이 감독 이규환의 이름도 빼버린 채 일본에서 상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에서 표절상영되었던 이 작품은 그 다음해인 1936년 6월 30일 조선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이 작품은 이규환이 『영화시대』라는 잡지에 연재하였던 시나리오 「새벽」을 수정한 것으로, 가난 때문에 가정의 비극이 일어나고 이 비극이 사회에까지 냉혹하게 파고든다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규환의 대표작인 「임자없는 나룻배」와 같이 한국적 사실주의의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