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상 최초의 극영화(劇映畫)로 연극계 윤백남이 자신이 이끌던 민중극단 단원들을 동원하여 1923년 4월 9일에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계몽영화로서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제작하였다.
당시 경성호텔에서 신문기자와 관계자 100여 명을 초대하여 시사회를 가졌고, 그 뒤 약 1년 동안 서울과 경기도일대에 선을 보이고는 1924년 2월부터 지방순회를 하였다.
서울 시외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는 지식청년 영득(권일청 분)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빚을 지게 되자, 그의 약혼녀 정순(이월화 분)의 아버지가 저축한 돈으로 빚을 갚아주게 되고, 두 약혼자는 혼인을 앞둔 어느 달 밝은 밤에 미래를 다짐하며 저축할 것을 맹세한다.
이월화가 데뷔하였고, 각본·감독·연기를 모두 우리나라 사람이 맡았으나 촬영과 현상은 일본인이 맡았다. 계몽영화로서 극장에서 개봉되지는 않았지만 최초로 만들어진 극영화라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