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에 있다. 봉분 앞에 상석과 향로석, 장명등, 그 우측에 묘비가 있으며, 묘역 앞 좌우로 문인석 1쌍이 배열되어 있다.
높은 사성(莎城 : 무덤 뒤를 반달모양으로 두둑하게 삥 둘러쌓은 흙더미) 위에 곡담이 설치되어 있어 다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한 독특한 구조의 묘역이다. 묘역 전방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로 쓰여진 신도비가 있다.
민영환은 1861년(철종 12)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878년(고종 15)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 대사성·병조판서·형조판서·한성판윤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896년에는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세계일주를 한 후 귀국해 군부대신 등을 역임하였다.
1897년에는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 6개국 특명전권공사가 되어 각국을 순방, 서양의 발전된 문물 제도를 직접 체험하였다. 귀국 후에는 독립협회를 열렬히 후원하다가, 황국협회의 공격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기도 하였다.
곧 복직해 참정대신·탁지부대신을 지냈으며, 러일전쟁 후에는 일본의 내정간섭에 항거하다가, 한직인 시종무관으로 좌천당했다.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전 의정대신 조병세 등과 함께 을사조약에 찬동한 5적의 처형과 조약의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일제의 침략을 죽음으로 항거하기 위해, 국민에게 각성을 요망하는 글, 외교사절에게 일본의 침략을 직시하고 조선을 도와줄 것을 요망하는 글, 황제에게 고하는 글 등 세 통의 유서를 남기고 자택에서 자결하였다. 그의 자결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어 많은 순국지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