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높이 3.5m. 1362년(공민왕 11) 공민왕이 홍건적을 격파하고 법주사에 행차하여 통도사에 봉안되어 있던 석가모니의 사리 한 개를 이곳에 옮겨 봉안하였다고 한다.
형식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으로서 기단부 위에 탑신(塔身)을 얹고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얹었으며, 정상부에 상륜(相輪)을 장식하였다. 기단부는 상대(上臺) · 중대(中臺) · 하대(下臺)로 구성되었는데, 평면방형의 지대석(地臺石) 위에 평면 8각의 기단이 놓여 있다.
기단의 윗면은 경사지게 깎여 있으며 각 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마멸되어 알 수 없다. 하대도 상면을 경사지게 깎았으며 하면은 8각의 각 면의 안상(眼象) 안에 삼산형(三山形)의 화문(花文)을 장식하였다. 중대는 8각의 각 면에 우주(隅柱: 모서리기둥)와 안상을 조각하고 안상 안에 삼산형의 화문을 조출(彫出)하였다.
상대는 8엽(八葉)의 복판앙련(複瓣仰蓮)으로 장식하였고, 판단(瓣端) 위에 낮은 부연(副椽: 탑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을 표현하였다. 탑신은 구형(球形)으로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옥개석은 8각으로 낙수면(落水面) 경사는 상단에서는 급하나 하단부에 이르러 다소 완만하고, 옥개의 각 변은 곡선을 이루었다.
상륜부는 낮은 호형(弧形)의 원좌(圓座) 위에 큼직한 원대(圓臺)를 마련하고 그 위에 보주(寶珠)를 장식하였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형태의 사리탑으로 고려 말기의 부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73년 보수할 때 철책을 설치하여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