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때의 고승인 학조대사 등곡(燈谷: 1432∼1514)의 부도로서 1514년(중종 9)에 조성되었는데, 등곡의 스승인 신미대사(信眉大師)의 부도 뒤편에 있다. 학조화상은 1464년(세조 10)속리산 복천암에서 왕을 모시고 스승 신미와 함께 대법회를 열었고, 1467년(세조 13) 금강산 유점사를 중창하고 봉선사에 주석한 후 김천 직지사에 머물면서 1488년(성종 19) 인수대비의 명으로 해인사를 중수하고 진관사, 대자사, 낙산사를 중수하였다. 1500년(연산군 6)에는 왕비 신씨의 명으로 해인사 고려대장경 3부를 인행하여 발문을 짓는 등 조선 전기에 활동한 고승이다. 1514년(중종 9) 그의 부도가 속리산 복천암과 함께 김천 직지사에 세워졌다. 200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탑의 높이는 2.96m로, 기단의 상대(上臺) · 중대(中臺) · 하대(下臺)의 평면이 모두 8각인 8각 원당형부도(圓堂形浮屠)로서, 기단부 위에 탑신(塔身)을 놓고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덮었으며 정상에 상륜(相輪)을 장식하였다.
하대는 지대석(地臺石)의 구실까지 하고 있어 높은 편이나 윗면에는 아무런 조식(彫飾)도 없다. 팔각의 중대석도 별다른 장식이 없고, 상대석은 측면 아래의 모서리를 죽여 활처럼 굽은 모양을 이루었고 이에 연속하여 1단의 받침을 조각하였는데 이것은 사면이어서 하대 괴임돌의 상면과 대칭을 이루었다.
탑신은 구형(球形)으로 아무 조각도 없으나 곱게 다듬어서 면과 곡선이 부드럽고 정연하다. 옥개석은 하면 중앙부의 탑신부에 놓이는 부분에 원형의 몰딩(moulding)이 있고, 상면은 상단부에서 약간 급경사를 보이나 중간부터는 완만해졌다. 낙수면(落水面)은 모서리마다 합각(合角)의 머리가 굵게 표현되었으며, 각 전각(轉角)마다 귀꽃이 하나씩 조각되어 있다.
상륜부는 낮은 호형의 원좌(圓座) 위에 굵직한 원대(圓臺)를 마련하고 그 위에 1단의 낮은 호형의 원좌를 마련한 뒤 그 위에 보주를 양각하였다.
탑의 팔각 중대석 두 면에 걸쳐 ‘정덕구년 갑술오월 일립(正德九年甲戌五月日立)’그리고 ‘학조등곡 화상탑(學祖燈谷和尙塔)’이란 5행의 명문이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1514년(중종 9)에 건립되었음을 알게 한다.
보은 법주사 복천암 학조화상탑은 건립연대와 주인공의 존명이 밝혀진 귀중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부도는 탑비가 부족하여 절대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가 드문데 이 부도는 고려 부도를 계승한 조선 초기 부도양식을 알게 함과 동시에 다른 부도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