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전기의 고승 혜각존자(慧覺尊者) 신미(信眉, 1405∼1480)의 부도로 1480년(성종 11)에 조성되었다. 신미는 성종 때 영의정에 추층된 김훈(金訓)의 장자로, 이름을 김수성(金守省)이라 했고 수암(秀庵)이라 불렸다. 그의 둘째 동생이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이므로 1405년 무렵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미는 성균관에 입학했다가 출가하였으며, 1446년(세종 28) 무렵 세종과 조우하여 여러 대군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유생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판선교종직(判善敎宗職)을 제수받았으며 국가적인 행사인 수륙제를 관할하였다. 문종대에 선교양종을 통솔하는 위치에 올랐으며, 세조대에는 불경간경사업을 주도하며 세조의 존경을 받고 그의 두 제자 학열(學悅)과 학조(學祖)와 더불어 삼화상으로 불렸다. 그의 부도는 제자인 학조의 부도와 함께 속리산 복천암에 봉안되어 있으며, 2004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에서 보물로 승격 지정되었다.
수암화상탑은 높이 3.02m이며, 8각 원당형부도(圓堂形浮屠)의 모습을 보인다. 기단 위에 탑신(塔身)을 놓고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을 덮은 뒤 상륜(相輪)을 장식하였다.
기단부는 8각의 상대(上臺) · 중대(中臺) · 하대(下臺)로 형성되었으며 아무런 장식이 없고, 상대 중앙에 탑신이 놓여 있다.
구형(球形)의 탑신 표면에도 아무런 조각이 없다. 옥개석은 8각으로 상단에서는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나, 하단부에 이르러서는 다소 완만해졌다.
상륜부는 옥개석 정상에 보주(寶珠)만을 조각하였다. 기단 중대석의 한 측면에 “수암화상탑 성화16년 8월 입(秀庵和尙塔成化十六年八月立)”이라는 3행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어서 1480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수암화상탑은 고려시대 팔각원당형부도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으나 탑신이 구형인 점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초기의 표준적인 부도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부도로서 조형수법이 뛰어나며, 특히 주인공의 존명과 조성년대를 부도에 직접 기록하고 있어 조선시대 부도의 절대년대를 알 수 있는 기준작으로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