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8칸, 측면 2칸의 목조와가 팔작지붕건물.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451∼1452년 문종 때 건립되었다. 높이 50㎝의 석축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민흘림의 원형주를, 내부 일부는 방형주(方形柱)를 세웠다.
전체규모는 건평 35평이고 백골집[白骨家: 단청이나 다른 칠을 하지 않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 홑처마이며, 공포양식(栱包樣式)은 익공계(翼工系)인데 주심포(柱心包) 사이에는 화반(花盤: 주심도리 밑 장혀를 받는 초새김한 받침)을 두어 지붕의 하중 일부를 창방에 전달하고 있다.
평면의 형태는 중앙에 대청을 두고 양 옆에 온돌방을, 다시 양 온돌방의 바깥쪽에 마루를 두고 있으며 방은 모두 전면과 외측에 분합문(分合門)을 설치하고 있다. 이 건물 전면에는 객사문이라 불리는 삼문(三門)이 있고, 전면과 우측면에 각각 계단을 두어 건물 내로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보통학교와 면사무소로 사용하였다.
창호(窓戶)가 모두 유리문으로 개조되어 있고 기단 위는 콘크리트로 발라져 있으며, 내부구조도 일부 변경된 채 사용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던 것을 1984년 원형을 찾아 해체, 복원하여 일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