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종 15책. 필사본. 197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저자는 25세 되던 1677년(숙종 3)에 사마시(司馬試), 1680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에서 4년, 외직에서 8년 모두 12년간 관직에 있었던 이외에는 81세로 일기를 마칠 때까지 학문에만 전념하여 60여종 200여책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유고 중 중요한 것을 보물로 일괄 지정한 것이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역학(易學) 관계 저술인 『선후천(先後天)』, 신라 · 고려 및 조선 초기의 속악(俗樂)을 모아놓은 『악학편고(樂學便考)』, 고려 및 조선 초기의 가곡을 수집해놓은 『악학습령(樂學拾零)』, 강화(江華) 및 수어책(守禦策) 관계 저술인 『강도지(江都誌)』, 제주도 관계 저술인 『남환박물지 南宦博物誌』와 『탐라순력도 耽羅巡歷圖』, 국책주의록(國策奏議錄)인 『둔서록(遯筮錄)』, 유목별(類目別) 색인서인 『부부유목(覆瓿類目)』, 잡집류(雜集類)인 『정안여분(靜安餘噴)』, 대마도(對馬島) · 국속문자(國俗文字) 등에 관한 저술인 『동이산략(東耳刪略)』 등이다.
그는 성리학뿐 아니라 예악(禮樂) · 역사 · 전기(傳記) · 지리 · 시문 등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실학(實學)에도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이 유고는 비록 조선 후기에 저술된 것이지만 국학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의 이수창(李秀昌)이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