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여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경전으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은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3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가 들어 있다. 서분은 부처님이 왕사성 기사굴산에서 아난다의 청법으로 부처님이 경을 설한다. 먼저 부처님이 고골을 보고 부처님이 예배하는 것이 경을 설하는 동기가 되어, 부처님이 부모의 은덕을 설하고 아난이 어떻게 그 은혜에 보답하는지 질문하여 경을 조성하고 7월 15일에 우란분절의 공양을 올리며 경을 서사하라고 답한다. 이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애쓰는 내용을 설하고, 자식이 부모를 홀대하는 모습을 설한다. 부처는 부모를 위하여 『부모은중경』을 수지하면 죄를 멸하고 부모님이 해탈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유통분은 경을 주지하도록 하고 경명을 설하여 맺고 있다.
이 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써,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였다.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이 경은 유교의 『효경(孝經)』과 비슷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부모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십대은(十大恩)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십대은은 ① 어머니 품에 품고 지켜주는 은혜[懷耽守護恩], ② 해산 날 즈음하여 고통을 이기시는 어머니 은혜[臨産受苦恩], ③ 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는 은혜[生子忘憂恩], ④ 쓴 것을 삼키고 단 것을 뱉어 먹이는 은혜[咽苦甘恩], ⑤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는 은혜[廻乾就濕恩], ⑥ 젖을 먹여서 기르는 은혜[乳哺養育恩], ⑦ 손발이 닳도록 깨끗이 씻어 주시는 은혜[洗濁不淨恩], ⑧ 먼 길을 떠나갔을 때 걱정하시는 은혜[遠行憶念恩], ⑨ 자식을 위하여 나쁜 일까지 짓는 은혜[爲造惡業恩], ⑩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 주는 은혜[究意憐愍恩] 등이다.
둘째,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보아 매우 과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하여 10개월이 될 때까지를 1개월 단위로 나누어서 생태학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셋째,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어 유교의 『효경』이 아버지의 은혜를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점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넷째, 유교의 『효경』이 효도를 강조한 데에 비하여 이 경은 부모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 경에서도 그와 같은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방법의 제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보은의 방법은 부수적인 것이고, 근원은 은혜의 강조에 두고 있다. 그리고 은혜를 갚는 구체적인 방법으로서 7월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부모를 위해서 이 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잘 익혀 마음에 새기면 오역(五逆)의 중한 죄라도 소멸된다고 하였다.
이 경은 중국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 널리 보급되었고, 나라마다 많은 유통본을 남기고 있다. 우리나라 유통본은 대부분 『불설대보부모은중경』이라는 명칭으로 불려 왔으며, 특히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이 경이 많이 간행되었다. 조선 초기부터 변상도를 곁들인 판본이 많이 간행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언해본이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 경은 중국에서 695년 편찬한 『대주간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이후 『개원석교록』 등에 보이고 있어서 위경(僞經)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후한시대 안세고 역출의 『불설부모은난경(佛說父母恩難報經)』도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서 이 경을 모본으로 중국에서 찬술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중국에 알려진 『부모은중경』은 사본과 판본 석각 등 다양한 형태로 약 103종이 알려져 있고, 일부의 결락이 없는 온전한 것은 18종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1314세기 판본(라집역 목판본 용연사 복장본)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려 간행으로는 1378년 『불설대보부모은중경』 2종이 있는데 무오본(戊午本)은 기림사 복장본으로 보물 959호216호이고, 리움 소장본은 라집역본으로 국보 705호이다. 조선시대 간행본으로는 80여 종이 개판되었다. 1441년(조선 세종 23)에 간행된 전라도 화엄사(花岩寺) 목판본 『대보부모은중경(大報父母恩重經)』, 1534년(조선 중종 29)에 간행된 전라도 도솔암(兜率庵)본 『대보부모은중경(大報父母恩重經)』 등 다수의 판본이 있으며, 1430년(세종 12)의 개판본(개인 소장)도 보이고 있다. 언해본은 판본의 계통에 따라 오응성(吳應星)의 초역본(1441년)을 1545년 간행한 이래로, 초역본계 조원암본계, 금산사본계, 한글본계 등 4계 40여 종이 전한다.
이 경에는 경의 내용을 설명하는 변상도(變相圖)가 있다. 대개 21~22장의 변상 판화가 붙어 있는데, 경을 설하는 설법도, 부처가 길을 가다가 고골에 예배하는 여래예배고골도(如來禮拜枯骨圖), 어머니의 10대 은(恩)을 그린 십은변상도(十恩變相圖), 어머니 은혜를 비유한 팔비유도(八譬喩圖), 불효자가 지옥에 떨어지고 효행으로 부모가 천상의 쾌락에 간 아비타고상계쾌락도(阿鼻墮苦上界快樂圖) 등이 들어 있다. 유명한 변상도로는 조선 정조가 부모의 은혜를 기리는 뜻에서 개간하도록 하고, 김홍도(金弘道)의 그림이 첨가되어 있는 수원 용주사(龍珠寺)의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밖에도 수십 종의 판본이 전하는데, 이들은 모두 효도가 강조된 조선시대에 불교의 효를 강조함으로써 그 사회의 저변에서나마 불교를 전파하려고 하였던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내의 현존본으로 1563년 전라도 송광사 간행본은 화장사판의 사진과 대조하면 아무 차이가 없으므로 송광사본은 화장사판이나 그에 앞선 원간본의 복각이라 할 수 있다. 혼란되지만 ‘ᅀᅠ, ᄠᅳᆷ’이 나타나고 방점은 없다. 방점 표기가 없어진 초기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임진왜란 이전의 간본으로는 1564년 황해도 명엽사(明葉寺), 1567년 은진 쌍계사, 1592년 풍기 희방사의 판본 등이 있다. 모두 복각으로 보이며 판식과 언어 사실에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임진왜란 이후의 간본은 『부모은중경』을 복각하거나 한글의 번역문만으로 만들었는데, 모두 10여 종의 이판이 전한다. 불교 연구는 물론이고 국어사와 판화(版畫) 연구의 자료로도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