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신을 낳아준 부모 가운데 남자 어버이를 가리킨다. 한자어로는 부친(父親)이다. 아버지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서 한 가족의 가장 중심되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직접 호칭은 ‘아빠’, ‘아버지’, ‘아버님’ 등 세 가지에 불과하다. 아버지에 대한 관계 지시 호칭어는 39종이나 된다. 전통적 가족제도에서 부자 관계의 기초가 된 것은 효 또는 효도였다. 효도의 관념이 가족생활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규정짓고 그의 권위를 뒷받침하였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부장제는 영속적인 가계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수단이었다.
한자어로는 부친(父親)이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한 가족의 가장 중심되는 인물은 아버지이다. 남성 우위의 부계친족제사회에서 가정의 우두머리인 가장(家長)은 부인에게는 남편이요, 자녀들에게는 바로 아버지이다.
가계(家系)의 존속을 강조하는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가족의 우두머리인 가장은 시조에서부터 수많은 세대의 조상들을 거쳐서 대대로 이어져온 가계를 물려받은 사람이고, 또한 이 가계를 단절 없이 후세에게 이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렇게 본다면 어느 가족에게서나 아버지는 먼 과거에서 시작되어 미래로 연결되는 가계의 연결고리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실 가계계승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자식 특히 아들을 가계의 대를 물려줄만한 인물로 키우는 것이 바로 아버지에게 달렸다고 할 정도로 그의 임무는 막중한 것이다.
아버지가 가족의 중심적인 인물이기에 전통사회에서는 친족호칭에 있어서도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가 극히 다양하여, 이 많은 용어들 중 맥락에 따라서 얼마나 적절히 잘 구사할 수 있느냐는 것이 개인의 학식과 품위를 가늠하는 한 중요한 지표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면전에서 직접적으로 부를 때에 사용하는 직접호칭은 ‘아빠’ · ‘아버지’ 그리고 ‘아버님’ 등 세 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버지를 간접적으로 지칭하는 관계지시호칭은 우리 나라의 각종 친족원 중에서도 가장 다양하여 최재석의 『한국가족연구』에 실린 ‘친족호칭일람표’에는 다음과 같이 무려 39개의 종류가 나타나 있다.
즉, 아버지 · 아버님 · 아비 · 아범 · 애비 · 어른 · 집의 어른 · 어르신네 · 부(父) · 부친 · 부주(父主) · 부왕(父王) · 현고(顯考) · 가친(家親) · 가군(家君) · 엄친(嚴親) · 가엄(家嚴) · 가대인(家大人) · 가군부(家君父) · 노친(老親) · 선고(先考) · 선친(先親) · 선인(先人) · 선군(先君) · 존당(尊堂) · 춘당(椿堂) · 당장(堂丈) · 춘부장(椿府丈) · 대정춘장(大庭椿丈) · 춘부대인(椿府大人) · 존대인(尊大人) · 춘정(椿庭) · 영존(令尊) · 선대인(先大人) · 선장(先丈) · 선고장(先考丈) · 선부군(先府君) · 선장(先長) · 대인(大人) 등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분명히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고려하지 않고 혼동한다는 것은 중대한 실수를 범할 소지가 있다. 예컨대 다른 사람의 생존하고 있는 아버지를 지칭한다는 것이 사거(死去)한 아버지를 지칭하는 용어를 대신 사용하는 실수를 범한다는 것은 용서받기 힘든 중대한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관계지시호칭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체계화하기는 힘들지만, 여기에서는 간단히 쉽게 확인될 수 있는 몇 가지의 측면만을 지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인용되는 사람(아버지)이 모두 친족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친족조직내에서의 연령 및 항렬로 따져서 신분의 차이에 따라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
즉, “애비 왔느냐?”와 같이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 말할 때에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호칭을 사용하지만, 윗사람인 경우에는 “아버님 오셨습니까?”와 같이 자기의 입장에서의 호칭을 사용한다.
둘째로,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인용할 때에는 아버지가 생존하는지 사거한 사람인지에 따라서 각기 ‘가친’과 ‘선친’으로 구분된다.
셋째로, 타인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여서 생존할 때에는 ‘춘부장’으로 지칭되지만, 사거한 사람이라면 ‘선고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넷째로, 단지 기록에 올리기 위한 관계지시호칭으로는 문서에서 사용되는 문어체로는 ‘부(父)’로 쓰지만, 구어체로는 ‘아버지’라는 용어가 그대로 사용된다.
이상은 관계지시호칭만을 문제 삼았지만, 아버지를 호칭하는 경우에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지적되어야만 하겠다. 즉, 면전에서 직접 아버지를 부르는 경우, 어려서는 ‘아빠’라고 하였다가 커서는 ‘아버지’ 또는 ‘아버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러나 편지에서는 대체로 ‘아버님’이라는 용어를 흔히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부주 · 부주전(父主前)’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다섯째로, 아버지가 죽은 뒤 제사를 지낼 때의 축문에서는 ‘현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직접호칭의 경우에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아버지’라는 호칭 그 자체가 ‘자식들의 아버지’이기에 우리의 가족제도에서 아버지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부자관계의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부자관계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모 중에서도 우리의 부계 위주의 가족제도에서는 아버지가 중심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간의 관계로 좁혀서 생각해도 좋겠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에서 부자관계는 가족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으뜸되는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의 기초가 된 것이 바로 효(孝) 또는 효도(孝道)였다. 효는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전반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식의 부모에 관한 태도 및 행위규범이다. 효는 간단히 말해서 부모를 섬기는 일이다.
자신을 낳아주고 또한 길러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식은 부모로부터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은혜를 입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부모를 섬긴다는 것은 단지 부모를 모시고 산다거나,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거나 편안하게 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모든 행위 일체가 이 효도와 관련하여 설명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근대적인 교육기관이 설립되기 이전에는 공식적인 교육이 서당 · 향교 · 사학(四學) · 성균관 등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교육기관에서 교재로 사용되었던 주요 서적들은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의식을 굳히는 데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대부분은 성현들의 말에서 따온 것이었고, 특히 조선시대를 거쳐오면서 그 내용들은 가족의 이상적인 가치의식으로 우리 문화에 뿌리를 깊이 내렸다.
『천자문』 · 『동몽선습』 · 『격몽요결(擊蒙要訣)』 · 『소학』 · 『논어』 · 『맹자』 · 『대학』 · 『명심보감』 · 『효경』 · 『중용』 · 『예기』 등은 이들 전통적인 교육기관의 대표적인 교재이었다. 이런 교재들에는 효도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들이 빠짐없이 들어 있었고, 공식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주입되었다.
자식의 어떤 행동이 효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행동인지에 관해서는 위의 문헌들에 잘 나타나 있지만, 이는 부모를 존경하고[恭順之道], 항상 부모의 곁에 있으면서 시중을 잘 들 것이며[侍中], 부모를 잘 봉양하고[扶養],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일[安樂], 그리고 부모의 뜻을 받드는 일[父母之道 實踐] 등으로 크게 나누어질 수 있다.
이런 것은 모두 부모에 대한 자식된 도리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를 다하기 위해서는 자식은 일상생활에서 항상 부모를 섬기는 일과 관련지어서 행동하고 생각할 것이 요구되었다.거기에다가 이것은 부모가 생존해 있을 때뿐만 아니라, 부모가 죽은 뒤까지도 연장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이 효도는 아버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부모에 관한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부계제이고 가족생활의 중심이 아버지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효도의 관념이 가족생활에서 아버지의 위치를 규정짓고 그의 권위를 뒷받침하는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우리의 전통사회에서 강력한 가부장제는 효도 관념의 뒷받침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의 가족제도가 먼 조상으로부터 부계로 이어져 현재까지 이르렀고, 또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가계존속(家系存續)’을 하나의 이상으로 삼고 있기에,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가부장제는 영속적인 가계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아버지의 권위는 가정생활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였고, 화합과 통합의 구심점이었다.
우리의 가족은 서구의 핵가족에서와 같이 남녀 두 사람간의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이 창설되고, 이 두 사람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조상으로부터 미래의 자손들에게로 이어지는 가계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는 한 지점에 불과하다. 가장인 아버지는 대대로 이어온 가계를 잘 운영하여 다음의 세대로 이을 의무를 지고 있다.
아버지에게 자식 특히 아들은 자기의 대를 이어서 가계를 물려받을 후보자이기에, 앞으로 자신의 가계의 성쇄가 곧 아들을 후계자로 잘 키우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기에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엄격한 훈육 담당자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의식에서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우리의 가족제도의 소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서운 아버지’나 ‘엄격한 아버지’는 가족구성원들을 통솔하고, 가족을 하나의 사회집단으로 운영하며 존속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였다. 우리의 옛 속담에 ‘그 아버지를 알고 싶거든 먼저 그 아들을 보라.’든가, ‘그 아버지가 그 아들을 길러낸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간에는 모습이나 행동에서 닮은 데가 많아서 아들만 봐도 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가계를 이을 후계자로서의 자식에게 그만큼 관심을 가지고 훈육에 임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버지의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자식이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하고, 또한 자식의 행동을 통해서 그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를 추측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사회의 가족에서 ‘엄한 아버지’의 이미지는 오늘날에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머니에 비해 상대적일 뿐이고, 이와는 반대로 전통적인 아버지의 권위는 훨씬 약화되었거나 아예 상실되고 말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마도 이것은 현대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아버지가 가정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시간을 할애하는 경향으로 바뀐 것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 현대에는 ‘적게 낳아 잘기르자’는 말과 같이 자녀의 수는 적어졌고, 부모가 못 이룬 꿈을 자식이 대신하여 이루어주도록 기대하면서 자식들을 너무 귀하게 여기는 풍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런 풍조는 결국 자식들을 과보호하는 현상으로 연장되었고, 아버지를 무서운 권위주의적인 존재로 간주하는 전통적인 가치의식은 이제 상당히 느슨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