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매허증신사는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에 있는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주신(主神)은 시타테루히메[下照比賣命] 또는 아카루히메[阿加流比賣]이며, 주신의 이름을 따서 시타테루히메사[下照比賣命社]라고도 한다. 고대 한반도(특히 신라)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간 집단의 선조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유서가 깊은 신사 가운데 하나이다.
927년에 성립된 『연희식(延喜式)』에서 명신대사(名神大社)로 나온 유서가 깊은 신사이다. 현재 모시고 있는 제신(祭神)으로는 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速素盞嗚命] ·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미코토[味鉏高彦根命] · 오오바세노미코토[小小橋命] · 오오사자키노미코토[大鵻命] · 다치바나토요히노미코토[橘豊日命] · 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下照比賣命]이다. 주신은 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이다. 주신의 이름을 따서 일명 시타테루히메사[下照比賣命社]라고도 한다. 그 뒤 닌도쿠왕[仁德王]을 함께 안치하여 닌도쿠제묘[仁德帝廟]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본 고대 문헌에는 이 신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몇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712년의 문헌인 『고사기(古事記)』 오진단[應神段]에는 신라의 아구소(阿具沼)라는 연못가에서 낮잠을 자던 여인이 햇빛을 받아 임신하여 붉은 구슬을 하나 낳았는데, 이 구슬이 사람으로 변하여 신라국의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 · 천일창(天日槍)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거만한 남편을 뒤로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이 신사의 신인 아카루히메[阿加流比賣]가 되었다고 한다. 720년 편찬된 『일본서기(日本書紀)』 슈닌[垂仁] 2년 조에도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나온다. 여기서는 의부가라국(意富加羅國, 대가야)의 왕자인 츠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가 소 값으로 신령스러운 흰 돌을 받았는데, 이 돌이 아름다운 연인으로 변하자 왕자는 아내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여인은 나니와[難波, 지금의 오사카지역]로 도망을 가서 이 신사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설화에서 보듯이, 이 신사는 신라와 가야라는 차이는 있으나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인 것이 분명하다. 이 신사의 이름인 ‘히메고소[比賣許曾]’라는 말 가운데 ‘고소’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존칭인 거세(居世)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거나, 거서간(居西干)과 관련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이 신사는 859년에 종5위하(從五位下)에서 종4위하(從四位下)로 위계가 승급되었다. 사전(社傳)에 의하면 이 신사는 원래 아쿠메야마[愛來目山]에서 시타테루히메를 모신 것이 시작이라 하는데, 그 뒤 전국시대에 전란을 피해 이 신사의 섭사(攝社)인 고즈텐노사[牛頭天王社]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메이지[明治] 초기에 촌사(村社)로 지정되었으며, 1928년에 사전(社殿)을 개축하였다.
현재 주1는 오쿠니누시사[大國主社]와 시라타마이나리사[白玉稻荷社]라는 섭사의 사전이 남아 있다. 보물로는 「신사본연(神社本緣)」을 비롯하여 회화 · 고문서 · 공예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 호소카와 하루모토[細川晴元], 미요시 요시오키[三好義興]라는 봉건 영주의 서찰도 함께 들어 있다.
제일(祭日)은 10월 16일이지만, 근세에는 1월 12일이었다. 「섭진명소도회대성(攝津名所圖會大成)」에 의하면, 제일에 신에게 여러 가지 색깔의 경단을 만들어 나무꼬치에 끼워 바쳤다고 한다. 흔히 이 경단을 히메코소경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