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매허증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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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매허증신사의 고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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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오사카시[大阪市] 히가시나리구[東成區]에 있는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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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오사카시[大阪市] 히가시나리구[東成區]에 있는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사당.
내용

일본어로는 히메고소진자라 한다. 현재 모시고 있는 제신(祭神)으로는 하야스사노오노미코토[速素盞嗚命]·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미코토[味鉏高彦根命]·오오바세노미코토[小小橋命]·오오사자키노미코토[大鵻命]·다치바나토요히노미코토[橘豊日命]·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下照比賣命]로 되어 있다. 주신(主神)은 시타테루히메노미코토이다.

이 신사의 창건시기는 불분명하나 927년(延長 5)에 성립된 「연희식(延喜式)」에도 그 이름이 보이는 유서 깊은 신사이다. 일명 시타테루히메사[下照比賣社]라고도 한다. 그 뒤 닌도쿠왕[仁德王]도 안치하여 닌도쿠제묘[仁德帝廟]라고 불리기도 한다.

제신에 관하여 712년의 문헌인 『고사기(古事記)』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즉, 신라의 아구소(阿具沼)라는 연못가에서 낮잠을 자던 여인이 햇빛을 받아 임신하여 붉은 구슬을 하나 낳았다. 그런데 이 구슬이 사람으로 변하여 신라국의 왕자인 아메노히보코[天之日矛]의 아내가 되지만 남편의 학대로 말미암아 일본으로 건너가 이 신사의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의 문헌인 『일본서기』에도 비슷한 내용의 설화가 기술되어 있다. 즉, 그곳에는 가락국의 왕자인 쓰누가아라시토[都怒我阿羅斯等]가 백석(白石)에서 변한 여인과 결혼하려 하였으나, 그 여인은 이를 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이 신사의 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상의 설화에서 보듯이, 신라와 가야라는 차이는 있으나 이 신사가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임에는 틀림없다. 이 신사의 이름인 ‘히메고소’라는 말 중 ‘고소’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존칭인 거세(居世)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이 신사는 859년에는 조정으로부터 종5위하(從五位下)에서 종4위하(從四位下)로 위계가 승급되었다. 「사전(社傳)」에 의하면 이 신사는 원래 애래목산(愛來目山)에서 시타테루히메를 모신 것이 시작이라 하는데, 그 뒤 전국시대에 전란을 피해 이 신사의 섭사(攝社)인 우두천왕사(牛頭天王社)로 옮겨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명치(明治) 초기에 촌사(村社)로 지정되었으며, 1928년에 사전(社殿)을 개축하였다.

현재의 제일은 10월 16일이나 지난 근세에는 1월 12일이었다. 「섭진명소도회대성(攝津名所圖會大成)」에 의하면, 제일에 신에게 여러 가지 색깔의 경단을 만들어 나무꼬치에 끼워 받쳤다 한다. 흔히 이 경단을 히메코소경단이라 하였다. 그리고 신사의 앞에는 이 경단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한다.

현재 당우로는 대국주사(大國主社)·백옥도하사(白玉稻荷社)라는 섭사의 사전이 있다. 현존하는 보물로는 「신사본연(神社本緣)」을 비롯하여 회화·고문서·공예 등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는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호소카와[細川晴元]·미요시[三好義興]라는 봉건영주의 서찰도 함께 들어 있다.

참고문헌

『日本史に生きた渡來人たち』(段熙麟, 1986)
『日本の中の朝鮮文化』(金達壽, 講談社, 1983)
『日本の朝鮮と二千年』(中村新太郎, 東邦出版, 1981)
『日本の殘る古代朝鮮』-近畿編-(段熙麟, 創元社, 1976)
『歸化人』(今井啓一, 綜藝舍,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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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노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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