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寺傳)에 의하면 고구려가 멸망한 뒤 일본으로 망명한 고구려의 왕족인 약광(若光)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751년(경덕왕 10) 그의 시념승(侍念僧)이었던 승락(勝樂)이 약광이 고구려에서 가지고 온 성천존(聖天尊)을 안치하여 건립에 착수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이 사찰을 일명 성천원(聖天院)이라고도 한다.
승락이 완성하지 못한 채 죽자, 그의 제자이며 약광의 아들인 성운(聖雲)이 유지를 받들어 이 절을 완성하였다. 창건 이후 표방한 종파는 법상종(法相宗)이었으나, 1345년(충목왕 1) 수해(秀海)라는 승려에 의하여 중흥된 후에는 진언종(眞言宗)으로 개종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본당(本堂)을 중심으로 출입문에 해당하는 산문(山門)과 아미타당(阿彌陀堂) · 홀문(惚門)이 있다. 본당은 1690년대에 재건되었으며, 본존으로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이 모셔져 있다. 이밖에도 본당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 · 성관음(聖觀音) · 지장보살(地藏菩薩) · 애염명왕(愛染明王) · 일광월광양보살(日光月光兩菩薩) · 약광수호불성천존(若光守護佛聖天尊)이 안치되어 있다.
산문은 2층 누각으로 되어 있는데, 1830년(天保 1)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1833년에 완성되었다. 문의 좌우에는 풍신(風神)과 뇌신(雷神)이 모셔져 있으며, 누각의 2층에는 대일여래 · 칠관음(七觀音) · 십육나한(十六羅漢)이 안치되어 있다.
아미타당은 아시카가시대[足利時代]에 건립된 것인데,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으로 알려져 있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1704∼1710년 사이에 다카오카[高岡]라는 마을에 사는 카네코로쿠자에몽[金子六左衛門]이 부모를 위해 이를 다시 개축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곳의 본존으로는 우리나라 승려인 행기(行基)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아미타여래삼존(阿彌陀如來三尊)과 시왕존(十王尊)이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의 건축양식과 흡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홀문은 1624∼1643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로, 1974년에 개축되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동종(銅鐘) · 악구(鰐口) · 도쿠가와장군가사영기진장[德川將軍家寺領寄進狀] · 판비(板碑) 및 고려왕 약광의 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