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신당은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온조지초[園城寺町]의 미이데라[三井寺] 경내에 있는 사당(신사)이다.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명신(新羅明神)을 모시고 있다. 신라명신은 미이데라를 부흥시킨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의 당나라 유학길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신라명신이 봉안되어 신라사(新羅社)라고 불렀으며,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되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라젠신도로 개명되었다.
미이데라[三井寺]의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이며, 제신(祭神)은 신라명신(新羅明神)이다. 미이데라는 창건 초기에는 온조지[園城寺]라고 불렸다. 온조지는 7세기 후반에 건립되었으며, 당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엔친[圓珍 : 814~891][^1]이 부흥시키면서 번영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기록에 의하면 엔친은 853년 신라 무역선을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다. 5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신라의 장보고(張保皐)가 세운 신라사원(新羅寺院)인 산둥성[山東省] 주2에 머물다가 신라의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러나 도중에 배가 난파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신라명신이라 불리는 백발노인이 배에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엔친은 귀국 후 온조지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다시 그 노인이 나타나 영원히 불법을 수호할 수 있도록 절의 북쪽에 신을 모시는 곳을 마련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건물을 세워 신라명신상을 만들어 안치하고 이곳을 신라사(新羅社) 또는 신라신사(新羅神社)라고 불렀다. 현재의 건물은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된 것이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불(神佛)의 분리방침에 따라 신라젠신도라고 개칭하였다.
엔친은 868년에 천태좌주(天台座主)가 되었고, 지증대사(智証大師)로서 주위의 존경이 두터웠다. 그리고 그가 부흥시킨 온조지가 조정의 비호를 받아 크게 번창하였기 때문에 신라명신도 온조지의 다섯 수호신 중의 하나로서 크게 숭상을 받았다. 특히 신라명신에 대한 믿음이 두터웠던 미나모토 요리요시[源賴義][^3]가 그의 셋째 아들인 요시미츠[義光]의 성인식을 이 신사 앞에서 올리고 그로 인해 시라기사부로 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지금도 이 신사 옆에는 시라기사부로 요시미츠의 묘가 남아 있다.
현재 신라젠신도와 내부에 봉안되어 있는 신라명신상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건물 이름에 ‘당(堂)’자가 붙었지만 건축 양식을 볼 때 신사의 본전(本殿) 양식을 갖추고 있다. 신라명신상은 갈색의 포(袍)를 입고 있는 백발노인의 신상(神像)이다.
이 신사에는 신라명신상 이외에도 여러 엔친상을 보관하고 있다. 당원대사당(唐院大師堂)에는 중존대사(中尊大師), 어골대사(御骨大師)라고 하는 2점의 엔친상이 있으며,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정수리 부분이 뾰족하고, 머리의 윤곽이 전체적으로 계란형을 띠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 특징이다. 이것을 영개(靈蓋)라고 하는데, 밀교에서 예지 능력이 뛰어난 인물임을 강조하여 표현할 때 사용하는 양식이다.
미이데라 홈페이지에는 신라젠신도의 역사 및 건물 구조와 특징을 개략적으로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