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 ( )

가족
물품
경상남도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에서 1856년 최필주의 상례(喪禮) 때 제작한 4층 누각 건물형 상여.
이칭
이칭
생이, 소여, 대여, 윤거, 상거
물품
재질
나무, 천, 철
용도
시신의 운반
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
제작 시기
1856년(철종 7)
관련 의례
상례, 장례
내용 요약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는 경상남도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에서 1856년 최필주의 상례(喪禮) 때 제작한 4층 누각 건축형 상여이다. 이후 진주화단친목회에서 사용하다가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고, 1996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상여의 구조는 4층 누각형으로 되어 있다. 상여에는 용, 시립용, 봉황, 불로초, 학, 저승새, 신선, 희광이, 연꽃 등이 조각되어 있으며, 불교, 도교, 민간 신앙이 복합된 채색을 보여 준다.

정의
경상남도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에서 1856년 최필주의 상례(喪禮) 때 제작한 4층 누각 건물형 상여.
연원 및 변천

상여는 1856년(철종 7)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거주하던 전주최씨 통덕랑공파(通德郞공파) 21대손 최필주(崔必周, 1796~1856) 공의 주14주15하고자 특별 제작한 상여이다. 당시 산청 만석꾼이었던 최필주의 아들 동한(東漢)이 300냥을 주고 통영에 있는 김씨라는 조각공을 초청하여 6개월에 걸쳐 제작하였다.

이 댁이 고령댁(高靈宅)이라 불리게 된 것은 최필주의 현손인 24세 최선호(崔璇鎬)가 고령군수(高靈郡守)를 지냈기 때문이다. 최선호는 1919년 ㈜백산무역의 대주주이기도 하였다.

1933년 4월 17일 대동공업사 사장이던 진주화단친목회 김삼만 회장이 주1 15석을 주고 이 상여를 사서 진주화단친목회 회원의 초상 때 사용하였다. 1982년 5월 제32회 진주 개천예술제에서 개최한 ‘경남상여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것이 알려져 같은 해 11월 MBC문화방송의 요청으로 주16 의식을 재현하고, 그해 11월 23일 ‘레이다 11 묘지 강산’에 방송되었다.

그 후 진주화단친목회 회원 수가 줄어 상여를 맬 수 있는 인원이 부족하여 사용하지 않다가 1994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이를 세척 및 수리하고, 상세한 조사를 거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 신청하여 1996년 12월 3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제작방식

상여의 형태는 4층 누각식 건물 형태이다. 상여의 몸체 크기는 길이 263cm, 폭 65cm, 높이 170cm이다.

1층과 2층은 조립식으로 해체 조립이 가능하나, 3층과 4층은 고정되어 있다. 아래 2층은 난간과 주18을 둘러 단을 만들고, 상부 2층은 누각식 건물 형태이다. 1층은 영구를 안치하는 주2이고, 그 바깥 아래쪽에는 난간을 두르고, 바깥에는 검은색 휘장인 주19을 둘렀다. 그 표면에 가지각색의 천을 잘라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뜨린 여러 개의 진용(振容)을 달고, 삼색 띠를 둘렀다. 난간 궁판 위에는 19명의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인 시립용(侍立俑)을 세웠는데, 고인의 저승길을 배웅하는 형상이다. 표정과 손 모양이 다양하게 표현되었고, 치마를 입었으나 2명은 남자이다. 2층은 앞뒤 바닥에 판을 대고 여기에 청룡과 황룡이 용트림하는 정자용(丁字龍)을 세웠다. 상하로 짝을 이룬 청룡과 황룡을 좌우 바깥으로 배치하고, 앞으로 나온 백룡(白龍)의 턱에는 주3를 달았다. 네 모퉁이 바닥에 봉황을 세우고 턱에 대봉유소를 걸었다. 난간 궁판에 16명의 시립용을 세웠는데, 2명은 남자이다.

3층 평방에는 12지신을 배치하고, 벽면은 장생 동물과 신선, 불로초, 모란 등을 뚫어새기거나 그렸다. 상부에는 창방보를 걸고 4각 주4를 설치하였으며, 그 위에 주5주6을 건 후 주7를 설치하여 누각식 건물의 지붕을 형상화했다. 앞과 뒤에는 2층보다 작은 규모의 정자용을 세우고 2층보다 작은 봉황을 세우고 대봉유소와 종을 달았다. 3층 지붕 위에는 잡귀를 막는 주8를 앞뒤로 세웠다. 4층에는 벽면 없이 주9을 설치하고 그 위에 2줄목 주10를 눌렀다. 그 위에 주11과 평방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서까래와 부연을 설치하고 지붕을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기와지붕을 형상화하였다. 용마루에는 5마리의 날개를 편 저승새와 추녀마루 끝 4곳에는 각 1마리씩 날개를 접은 4마리의 저승새를 배치하였다. 3층과 4층 벽면에는 붉은색 천을 둘러 안이 보이지 않도록 하였다.

용과 봉황, 시립용, 망나니, 풍판을 고정하는 병아리 등의 입체 조각과 벽면의 뚫어새김과 그림, 단청의 기법이 뛰어나고, 섬세하다.

의의와 평가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는 제작 연대가 명확하고 규모가 웅장하며 가구 방법과 채색, 조각이 정교하다. 예서에서 규정하는 단층형 상여와는 다른 건물 형태가 특징이다. 상여는 용, 시립용, 봉황, 불로초, 학, 공작새, 신선, 주17, 연꽃 등의 조각과 채색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불교, 도교, 민간 신앙 등의 사상이 섞여 있음음을 보여 준다. 상여는 주13이라 하듯이, 상여에는 고인을 위한 상주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상여에는 상례(喪禮)의 문화적 전통인 유교식 상례에 다양한 종교적 이념과 고유문화가 융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인의 저승관, 상여, 공예, 조형학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사례편람(四禮便覽)』
『가례집람(家禮輯覽)』
『상변통고(常變通攷)』
『가례증해(家禮增解)』
『가례원류(家禮源流)』

단행본

김시덕, 『한국의 상례문화』(민속원, 2012)
『영원한 만남 韓國 喪葬禮』(국립민속박물관, 미진사, 1990)
김옥랑·이두현, 『한국의 나무꼭두』(열화당, 1998)
『중요민속자료 제230호 산청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 실측조사보고서』(국립민속박물관, 1998)
『중요민속자료 제120호 청풍부원군 김우명 상여 실측조사보고서』(춘천시, 2001)
『목인박물관 주요 소장품 도록 제1권』(목인박물관, 2006)
『상례, 슬픔을 함께 나누다』(경산시립박물관, 꼭두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2016)

논문

김무찬, 「한국상여의 변천사에 관한 연구(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김시덕, 「상여연구」(『남은들상여 실측조사보고서』, 예산군, 2003)
김아름, 「한국의 상여 장식 꼭두의 조형미 연구」(명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박종민, 「상여장식물의 표현양식과 상징적 의미」(『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2007)
박종민, 「한국상여의 변용과정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10)
이현경, 「삶과 죽음의 경계, 상여장식물의 이중적 구조」(『민속학연구』 25, 국립민속박물관, 2009)
정병흠, 「상여 장식 꼭두의 조형성과 민예미적 가치-산청전주최씨고령댁상여를 중심으로」(『기초조형학연구』 12-5, 한국기초조형학회, 2011)

인터넷 자료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481102300000&pageNo=1_1_1_0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kr/main
주석
주1

‘벼’의 열매. 가을에 영과(穎果)로 익는 것을 이르며, 이것을 찧은 것을 ‘쌀’이라고 한다. 쌀은 주식으로 밥이나 죽을 만들거나 떡, 과자, 술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 우리말샘

주2

좁은 곳이나 험한 길에 쓰던 작은 상여. 높은 벼슬아치의 장사에 썼다. 우리말샘

주3

상여의 네 귀에 늘어뜨리는 큰 매듭술. 우리말샘

주4

기둥 위를 장식하며 공포를 받치는 넓적하고 네모진 나무. 우리말샘

주5

마룻대에서 도리 또는 보에 걸쳐 지른 나무. 그 위에 산자를 얹는다. 우리말샘

주6

처마 서까래의 끝에 덧얹는 네모지고 짧은 서까래. 처마 끝을 위로 들어 올려 모양이 나게 한다. 우리말샘

주7

처마 끝에 가로로 놓은 오리목. 우리말샘

주8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나오는 백정의 탈. 우리말샘

주9

공포(貢包) 따위를 받치기 위하여 기둥 위에 초방(初枋)을 짜고 그 위에 수평으로 올려놓은 넓적한 나무. 우리말샘

주10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의 공간에 짜 올린 공포(栱包). 주로 조선 전기부터 많이 썼다. 우리말샘

주11

한식 나무 구조 건물의 기둥 위에 건너질러 장여나 소로, 화반을 받는 가로재. 오량(五樑) 집에 모양을 내기 위하여 단다. 한자를 빌려 ‘昌枋’, ‘昌防’으로 적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12

박공집으로 지은 전각이나 신당(神堂)의 두 쪽 박공 아래에, 바람과 비를 막으려고 길이로 잇대는 널빤지. 우리말샘

주13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 흙으로 둥글게 쌓아 올리기도 하고 돌로 평평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대개 묘석을 세워 누구의 것인지 표시한다. 우리말샘

주14

사람이 죽어서 장사 지낼 때까지의 일. 우리말샘

주15

시신을 넣은 관을 운반함. 우리말샘

주16

상가(喪家)에서 상여가 떠남. 우리말샘

주17

하회 별신굿 탈놀이에 나오는 백정의 탈. 우리말샘

주18

박공집으로 지은 전각이나 신당(神堂)의 두 쪽 박공 아래에, 바람과 비를 막으려고 길이로 잇대는 널빤지. 우리말샘

주19

옷의 가닥을 접어서 줄이 지게 한 것.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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