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남산성 ( )

서천 남산성 성벽
서천 남산성 성벽
건축
유적
문화재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南山)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정의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 남산(南山)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 성곽. 산성. 시도기념물.
개설

서천읍 4㎞ 남쪽에 위치한 남산(약 150m)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다. 남산 정상부는 동서 방향으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남쪽은 급경사를 이루고 북쪽은 두 개의 능선이 뻗어나간다. 성벽은 해발 117m∼137m 고도를 따라서 축조되어 있다. 정상부의 지형에 따라 성벽의 남쪽은 거의 직선에 가까우나 북쪽은 능선을 따라 돌출하였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약 633m이고 평면적은 21,664㎡이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 2개소가 있다. 산성 정상부에는 암반을 기초로 축조된 높고 평탄한 고대지가 있고 고대지와 성벽 사이에 평탄지에 건물지들이 산포되어 있다. 북쪽 계곡부는 성내부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이곳이 집수지나 우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변천

서천은 백제의 설림군(舌林郡)이었다가 신라 경덕왕때 서림군(西林郡)으로 개명되어 고려시대까지 그대로 사용되었다. 조사과정에서 백제토기가 출토되어 초축이 백제시대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백제토기가 성벽의 축조시기와 직접 관련된다는 근거는 부족하다. ‘서림’명 명문기와가 출토되고 신라토기 및 기와, 고려시대 기와 등도 출토되어 신라시대에는 산성이 축조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고려시대까지 유지되었다고 여겨진다. 조선시대 전기 기록에는 이 성을 읍석성(邑石城), 고읍성(古邑城)으로 기록하였다. 이 산성이 고려시대 일시적으로 읍성으로 기능하였던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고려말 조선 초 왜구 침탈기에 읍성으로서 기능을 대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성벽은 석축으로 자연지형에 따라서 축조방법이 다르다. 급경사 지역은 경사면을 삭토하고 경사면에 기대어 외벽만 축조하는 편축식을 사용하였다. 반면에 비교적 완만하거나 문지 주변과 같이 방어력을 높일 필요가 있는 곳은 외벽과 내벽을 같이 쌓아 올리는 협축식을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서문지 주변 성벽은 풍화암반을 ‘L’자형으로 굴착하여 정지한 후 그 위로 협축 성벽을 축조하였다. 하단부 폭은 680㎝, 붕괴된 상단부의 잔존 폭은 250㎝이다. 내벽은 잘 다듬지 않은 판석형과 장방형의 석재는 섞어서 쌓아 올려서 정연하지 못하다. 외벽은 면과 모를 잘 다듬은 장방형 석재를 사용하여 열을 맞추어 축조하였다. 기단석은 놓는 방법이 특징적인데 기단석을 놓을 자리에 풍화암반을 굴착하여 턱을 만들어 끼워 넣었다. 기단석이 앞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축조방식은 고구려나 백제 산성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외벽을 축조하면서 그랭이법을 사용한 것도 특징적이다. 성벽의 높이는 하단 폭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지는 3차에 걸쳐서 조성하였다. 초축(1차)문지는 나팔형으로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좁아지는 형상이다(외부 640㎝-중앙 585㎝-내부 557㎝). 문지 안쪽에서 성내부로 진입하는 곳에 7∼8단의 계단식 등성시설(길이 680㎝, 너비 340㎝)이 있다. 포천 반월산성 남문지와 유사한 형태로 주목된다. 2차문지는 1차문지가 폐기된 후에 축조되었다.폭은 270㎝로 1차 문지 규모를 반으로 줄여서 축조하였다. 3차문지는 폭 300㎝ 정도 2차 문지와 거의 차이가 없다. 2차 문지를 활용하여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3차 문지에는 초석과 함께 문지 중앙부에서 바닥석이 노출되었다.

특징

성벽 축조 방식에서 삼국시대 백제계 성벽 축조 방식이 보이고 있다. 출토유물은 백제토기부터 조선시대 자기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로 보아 서천 남산성은 백제시대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백제토기가 1차 성벽과 관련된다는 근거가 부족하여 백제시대 축성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참고문헌

『서천 남산성』(충청문화재연구원, 2006)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서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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