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정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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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정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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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무신 김경복과 이몽서의 행장과 전승(戰勝) 사실 등을 수록하여 1863년에 간행한 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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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무신 김경복과 이몽서의 행장과 전승(戰勝) 사실 등을 수록하여 1863년에 간행한 실기.
서지적 사항

5권 2책. 목활자본.

내용

선조 때에 북쪽 오랑캐를 토벌하고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막는데 공이 컸던 김경복과 이몽서의 행장 및 전승 사실 등을 수록하였다.

권두에 1863년 윤종섭(尹鍾燮)의 서문과 1848년(헌종 14) 이기례의 서문이 실려 있다. 여기서 제명에 대해 설명하기를, 중국 송나라 때 전공이 뛰어난 악비(岳飛)에게 송나라 고종이 친히 정충악비(精忠岳飛)라 쓴 깃발을 만들어 하사한 일이 있었다. 선조가 이를 본떠 김경복에게 악무목(岳武穆 : 악비의 시호)에 비유하며 ≪정충록≫을 특별히 하사했으므로 이 책의 제명을 ‘속정충록’이라 하였다고 한다.

김경복은 1580년(선조 13)에 무과에 급제한 뒤 북병사(北兵使) 신립(申砬)을 따라 함경도에 가서 오랑캐인 이탕개(尼湯介)의 부족과 싸워 소탕하는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는 임진왜란 때에는 북평사 정문부(鄭文孚)가 의병을 일으키자 그 선봉장이 되어 왜장 가토(加藤淸正)의 군사를 세 차례나 크게 물리쳤다.

이몽서는 1585년에 무과에 등과해 1586년에 북병사 이일(李鎰)을 따라 함경도 국경에 가서 오랑캐의 침략을 물리쳤던 인물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임금을 호종하고, 고원(高原)에 이르러 의병을 모아 왜적을 막는 데에 공을 세웠다.

이 책은 이 두 인물의 이러한 공적과 함께 행장 등을 싣고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권1은 계보와 거신(居身)을 싣고, 이어서 아산출전(阿山出戰)·강변화공(江邊火攻) 등과 같은 각종 전투 기록과 7매의 전승도가 실려 있다.

권2는 부록으로서 관북열읍지(關北列邑誌)와 기명(記銘)을 싣고 있다. 관북열읍지는 ≪쌍성지 雙城誌≫·≪경원지 慶源誌≫·≪경흥지 慶興誌≫·≪경성지 鏡城誌≫에서 김경복에 관한 기사만을 뽑은 것이다. 기명은 신정하(申靖夏)가 쓴 신도비명과 홍석주(洪奭周)가 쓴 묘갈명과 김경복의 8대손 김기례(金箕澧)가 쓴 행장을 옮겨 적은 것이다.

권3은 이몽서의 실기와 부록으로 관북열읍지, 이유(李秞)가 쓴 기문(記文), 진상점(陳尙漸)이 쓴 묘갈명, 김기례가 쓴 행장을 실었다. 관북열읍지는 ≪쌍성지≫·≪경원지≫·≪영소당기 永嘯堂記≫에서 이몽서의 기사만을 뽑은 것이다.

권4는 부록으로서 민정중(閔鼎重)과 남구만(南九萬)이 쓴 계본(啓本)과 예조회계(禮曹回啓)·묘당복계(廟堂覆啓)·제향축문(祭享祝文)·청액상소(請額上疏), 김기대(金器大)가 쓴 정충기(精忠記), 이장로(李長老)가 쓴 정충기를 각각 실었다.

권5는 정충사사액일기(精忠祠賜額日記)·예조계목(禮曹啓目), 예조판서 민종현(閔鍾顯)이 쓴 축문과 연향에 관한 기록, 양정축문(兩丁祝文)·위전(位田)·전사청(典祀廳)·고적(古蹟) 등을 실었다. 권말에는 김창희(金昌熙)가 쓴 서정충칠도후(書精忠七圖後)가 실려 있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집필자
홍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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