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송례 ()

고려시대사
인물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
이칭
시호
정렬(貞烈)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207년(희종 3)
사망 연도
1289년(충렬왕 15)
본관
여산(礪山)
주요 관직
찬성사, 중찬
관련 사건
1270년 왕정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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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송송례는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이다. 이후 원종대 후반부에서 충령왕 대 전반부에 일본원정에 필요한 군사를 징발하거나 외교적 교섭을 위해 원에 파견되는 등 고려의 재상으로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다.

정의
1270년(원종 11), 무신집정자 임유무를 처단하여 100년 무신정권을 무너뜨리고 왕정을 되돌리는 데 크게 공헌한 무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여산(礪山). 아들로는 충렬왕(忠烈王) 때 추성찬화안사공신낙랑공(推誠贊化安社功臣樂浪公)에 봉해진 송분(宋玢)이 있다.

주요 활동

1258년(고종 45) 3월 최씨정권(崔氏政權)을 무너뜨린 무오정변(戊午政變)에 낭장(郎將)으로 가담하여 위사보좌공신(衛社輔佐功臣)에 올랐다.

김준정권(金俊政權) 하에서 일정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1270년(원종 11)에 직문하성사(直門下省事)로서 어사중승(御史中丞) 홍문계(洪文系) 및 아들 송분과 함께 권신 임유무(林惟茂)를 죽이고 100년 무신정권을 종식시켰다. 아울러 임유무의 무리인 사공(司空) 이응렬(李應烈)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송군비(宋君斐)를 귀양보내고, 서방3번(書房三番)과 조성색(造成色)을 없애고 왕정(王政)을 복고(復古)시켰다.

뒤이어 상장군(上將軍)이 되어 세자 왕심(王諶: 충렬왕(忠烈王))이 몽골에 가자 그를 수행하였다. 1272년(원종 13)에 추밀원부사로 원나라에 가서 전년에 국호를 몽골에서 원(元)으로 고친 것을 축하하였다. 그 해 탐라(耽羅, 현, 제주특별자치도)의 삼별초(三別抄)를 토벌하기 위하여 군사를 검열하는 한편, 충청도지휘사(忠淸道指揮使)가 되어 군사를 징발하였다.

1273년(원종 14)에 동지추밀원사(同知樞密院事)로 책봉사(冊封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일본원정을 위한 군사를 징발, 보충하는 일을 맡았다. 1274년(충렬왕 즉위년)에 재추(宰樞)로서 곽자여(郭子璵)와 함께 몽골 풍속인 변발(辮髮)하는 일에 앞장섰다. 찬성사(贊成事) 중찬(中贊)으로 치사(致仕)하였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렬(貞烈)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김광철, 『고려후기세족층연구』 (동아대출판부, 1992)
윤용혁, 『고려 삼별초의 대몽항쟁』 (일지사, 2000)

논문

강재광, 「고려 무인정권 말기 무신 송송례의 정변 참여와 무인정권 붕괴」 (『한국중세사연구』 68, 한국중세사학회, 2022)
강재광, 「고려 원종대 송송례의 대몽외교와 군사활동」(『한국사연구』 198, 한국사연구회, 2022)
집필자
윤용혁(공주대학교 명예교수, 고려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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