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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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고려 · 조선시대, 주(州) · 부(府) · 군(郡) · 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의 총칭. 군수와 현령(縣令)의 준말로도 부르며 속칭 ‘원님’이라고도 부른다.
이칭
속칭
원님
제도/관직
소속
이전(吏典) 외관직
내용 요약

수령은 고려·조선 시대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의 총칭이다. 고려시대에는 모든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지 않았으나 조선시대가 되면서 전국 군현에 수령을 파견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수령의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조선은 원활한 수령제 운영을 위하여 수령의 선발, 임기, 고과의 기준을 정비하였다. 수령은 군현에서 수령칠사를 담당하였고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는 향리와 면리임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가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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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 조선시대, 주(州) · 부(府) · 군(郡) · 현(縣)의 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의 총칭. 군수와 현령(縣令)의 준말로도 부르며 속칭 ‘원님’이라고도 부른다.
내용

통일신라시대 전국을 9주로 구분하고 다시 주 밑에 120군과 305현을 설치했는데, 이것은 통일 전의 군과 촌(村 또는 城)을 개편한 것으로 군에는 태수(太守), 현에는 현령(소현(小縣)에는 소수(少守))을 중앙에서 파견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지방에 수령이 파견되지 못하고 호족(豪族)들의 자치에 맡겼으나, 983년(성종 2)에 최초로 12목이 설치되고 지방관이 파견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4 도호부사(都護府使) ·8 목사(牧使) ·56지주군사(知州郡事) ·28진장(鎭將) ·20현령을 파견하면서 지방 제도가 정비되었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500여 개의 군현이 있었지만 전부 수령이 파견되지는 않았고, 수령이 파견된 곳은 주현(主縣)이라 해 130개였으며, 나머지 374개의 속현(屬縣)은 주현의 수령이 겸임하였다.

중기 이후부터 상부 행정 기구로 5도(道)와 양계(兩界)를 설치하여, 도에는 안찰사(按察使), 계에는 병마사(兵馬使)를 파견하여 수령을 감찰하였다. 또한 14개의 계수관(界首官)을 둔 다음 관내 일반 군현의 향공(鄕貢) · 진상(進上) · 외옥수추검(外獄囚推檢) 등을 담당하게 하였는데, 이들 계수관은 주14 · 도호부사 · 목사 등이 겸임하였다.

조선 시대의 수령은 부윤(府尹, 종2품) ·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 정3품) · 목사(牧使, 정3품) · 도호부사(都護府使, 종3품) · 군수(郡守, 종4품) · 현령(縣令, 종5품), 현감(縣監, 종6품) 등이다. 그 품계는 종2품에서 종6품까지에 걸쳐 있었다. 주 · 부 · 군 · 현의 읍격(邑格)과 수령의 품계는 주2 · 주1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행정상으로는 모두 관찰사의 관할하에 있었다. 『경국대전』에 수록된 수령의 정원은 부윤 4인, 대도호부사 4인, 목사 20인, 도호부사 44인, 군수 82인, 현령 34인, 현감 141인이었다.

후기로 올수록 수령의 수가 증가하는데, 특히 도호부사의 정원이 늘어났다. 수령에 임용되려면 문과(文科) · 무과(武科) · 주3 중 하나를 통과해야 하는데, 상급 수령에는 문과가 많고, 연변(沿邊) 군현에는 무과가 많으며, 중소 군현에는 음과가 절대 다수였다. 하급 수령은 조선 초기에는 각사 이전(各司吏典)과 서리(胥吏) 등의 성중관(成衆官)에서 임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또 주5라는 특별 채용 시험에 의해서 선발되기도 했는데, 시험 과목은 강(講)과 주6이었다. 강은 주15 중에서 1책 및 『대명률(大明律)』 · 『경국대전』을, 제술은 백성을 다스리는 주7을 각각 시험 보았다.

수령은 군주의 분신(分身)으로 직접 백성을 다스리는 근민지관(近民之官, 또는 친민지관(親民之官))이라 해 항상 선임에 신중하였다. 수령의 경관겸직(京官兼職)과 임기 문제에 대해서 초기에는 논란이 많았다. 수령의 임기는 세종 이전까지는 30개월이었으나 여러 논의를 거쳐 세종 5년에 60개월이 되었다. 이후 『경국대전』이 확정되면서 수령의 임기는 1,800일(60개월)로 정해졌다. 당상관과 가족을 동반하지 않는 주8과 훈도의 임기는 900일로 정해졌다.

태조 때 이미 수령의 고과법(考課法)을 정해 주9 · 호구 · 주11 · 학교 · 소송 등에 대한 주16을 중심으로 선(善) · 최(最) · 악(惡) · 전(殿)의 4등급을 설정하고, 이를 다시 여러 등급으로 세분하였다. 수령의 고과 기준인 수령칠사(守令七事)가 조선 초기에 여러 논의를 거치면서 『경국대전』에 실려, 관찰사는 대략 이 기준에 따라 수령들의 실적을 조사해 매년 2회 중앙에 보고하였다. 이를 주12 또는 전최(殿最)라 했는데, 재직 중의 성적은 그 뒤의 승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령의 임무는 수령 고과 기준인 수령칠사(七事)가 말해 주듯이 주13 · 호구 증식 · 군정(軍政) · 교육 장려 · 징세 조역(徵稅調役) · 소송 간평(訴訟簡平) · 풍속 교정이었다.

수령의 하부 행정 체계로서는 향리와 면리임(面里任)이 있고, 자문 및 보좌 기관으로 유향소(留鄕所, 향청(鄕廳))가 있었다. 또한 감사(監使)병사(兵使)를 지낸 사람은 그 도의 수령이 될 수 없는 등 여러 가지 제한 규정이 있었다.

참고문헌

원전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태조실록(太祖實錄)』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단행본

이수건, 『조선시대 지방행정사』(민음사, 1989)
이존희, 『조선시대 지방행정제도연구』(일지사, 1990)
임용한,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혜안, 2002)

논문

구완회, 「세종조의 수령육기법」(『경북사학』 11, 1988)
권기중, 「조선시대 전라도 수령의 품계와 재임기간 - 전북 25개 군현을 대상으로 -」(『泰東古典硏究』 41,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8)
김동전, 「조선전기 수령제도연구」(『사학지』 21-1, 단국사학회, 1988)
김무진, 「조선중기 군현통치와 수령향통의 성격」(『손보기박사정년기념한국사학논총』, 1988)
김호일, 「조선후기의 외관제」(『국사관논총』 8, 1989)
오갑균, 「조선시대 수령직의 사법적 기능」(『용암차문섭교수화갑기념논총』, 1989)
이동희, 「19세기 전반 수령의 임용실태」(『전북사학』 11·12, 전북대사학회, 1989)
이수건, 「조선초기 군현제정비에 대해」(『영남사학』 1, 1971)
이존희, 「조선전기의 외관제」(『국사관논총』 8, 1989)
임선빈, 「조선초기 수령제운영과 지방통치」(『청계사학』 7, 1990)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논밭에 물리는 세금. 우리말샘

주2

호적상 집의 수효와 식구 수.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음관(蔭官)이 진출할 수 있던 벼슬. 보통 음관은 진급에 제한을 받았지만, 임금이 특별히 추천한 사람의 경우에는 문과 급제자 이상의 대우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있었다. 우리말샘

주5

재주를 시험하여 사람을 뽑음. 우리말샘

주6

시나 글을 지음. 우리말샘

주7

방법과 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임지에 가족을 데리고 가지 못하는 특별 지역에 부임한 수령. 우리말샘

주9

논밭으로 이루어진 들. 우리말샘

주11

국가나 공공 단체가 특정한 공익사업을 위하여 보수 없이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노역. 우리말샘

주12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우리말샘

주13

농사를 장려함. 우리말샘

주14

고려 시대에, 동경(東京)ㆍ서경(西京)ㆍ남경(南京)에 두어 그곳을 다스리게 하던 외관(外官) 벼슬. 우리말샘

주15

사서와 오경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논어≫, ≪맹자≫, ≪중용≫, ≪대학≫의 네 경전과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의 다섯 경서를 이른다. 우리말샘

주16

잘 다스린 공적. 또는 정치상의 업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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