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00.3㎝, 가로 52.5㎝. 우학문화재단 소장. 커다란 신광(身光: 부처나 보살의 몸에서 발하는 빛)과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으로 둘러싸인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발 위에 올려놓은 이른바 반가좌(半跏坐)의 자세로 오른쪽을 향하여 바위 위에 걸터 앉은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관음보살은 머리에서부터 전신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투명한 베일을 쓰고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다. 투명한 백의에는 금니(金泥)의 연화당초문원문(蓮花唐草文圓文)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그 아래 받쳐 입은 붉은색의 치마에는 백색 안료로 귀갑문(龜甲文)을 촘촘하게 그리고 그 위에 연화하엽문을 그렸다. 머리에는 화불[阿彌陀如來]이 표현된 보관을 쓰고 있다. 오른손의 손목에 유리구슬로 된 염주를 걸치고, 다시 엄지와 중지로 잡고 있다.
관음의 앞쪽 바위 끝 부분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淨甁)이 놓여 있다. 보살의 뒤로는 두 그루의 대나무가 곧게 솟아 있다.
왼발은 내려서 연화좌를 밟고 있으며, 관음의 왼발 앞쪽으로 선재동자(善財童子: 구도(求道)의 보살 이름)가 보살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합장하는 자세로 서 있다. 채색은 먹선 또는 주선(朱線)으로 윤곽을 그린 후 녹청과 군청, 백색, 황토, 금니 등으로 채색하였다. 육신부는 뒷면에서 백색 안료를 복채(伏彩)한 후 앞면에 금니를 칠하여 표현하였다.
이상과 같은 관음보살도의 형태는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의 전형적인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고려 불화의 형식과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 호쥬인(寶壽院) 소장의 수월관음도와 도상이 유사하여 주목된다. 관음보살의 자세와 화면 구성 요소 등이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일본 호쥬인본이 본 작품(세로 100.3㎝, 가로 52.5㎝)보다 훨씬 크고 선재동자의 모습, 채색, 배일의 형상 등에 차이가 있어, 보수원본을 모본으로 하면서 작가 나름의 변형을 시도한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수리를 통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된 이 작품은 고려 불화의 표현 기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