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는 1459년(세조 5) 조선 전기에 제7대 세조의 명으로 중창된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에 있는 사찰이다.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총30구의 불상군은 조선 전기와 후기의 왕실 불교 신앙과 불상 양식 변화를 보여주어 그 중요성이 크다.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은 1957년 초층 주6과 초층 주7이 벌어지면서 안에 봉안된 유물이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탑을 해체하였다. 당시 주8와 5층 주9을 들어올린 후 24층의 탑신을 한 번에 들어올려 1층 옥개석을 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때는 2층과 3층 옥개석에 봉안된 불상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1970년에 탑을 사찰 경내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해체하면서 23층의 금동 불상군까지 모두 수습되었다. 탑 안에 불상이나 사리를 봉안하는 전통은 고대부터 있어 왔지만, 수종사 탑처럼 시대를 달리하는 다량의 금동 불상군이 한 번에 봉안되는 예는 거의 발견된 바 없다. 출토 불상들에서는 명문과 주10이 함께 나오면서 발원자와 조성 연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불상군은 각각 15세기와 1628년(인조 6)에 봉안한 것으로 밝혀졌다. 1493년(성종 24)에는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와 성종의 후궁이었던 숙용 홍씨(淑容洪氏), 숙용 정씨, 숙원 김씨(淑媛金氏) 등이 함께 발원하여 5층의 석탑 안에 주11와 주12을 비롯한 6존의 불상군을 조성하여 봉안하였다.
1628년(인조 6)에는 선조의 주13였던 인목대비(仁穆大妃, 15841632)가 친정아버지 김제남(金悌南)과 아들 영창대군(永昌大君, 16061614)의 주14을 위해 23존에 달하는 불보살상을 조성하고 성종대에 세워졌던 석탑을 130년 만에 다시 열어 그 안에 봉안하였다. 그 뒤 퇴락한 절을 1890년(고종 27)에 혜일(慧一)이 고종에게 8,000냥을 하사받아 중창하였다. 다음해 다시 4,000냥과 금백홍사(金帛紅絲: 황금과 비단 및 홍실 등의 재물)를 시주받아 사존불(四尊佛)을 주15 이 때 주16이 있었다고 한다. 1936년과 1939년에 태욱(泰旭)이 주17 한국전쟁 때 석조물을 제외한 모두가 불타버렸다. 1974년 주지 장혜광(張慧光)이 주18 등을 복원하고 1981년 대응이 산신각 · 종각 등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주19로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응진전(應眞殿) · 약사전(藥師殿) · 산신각 · 주20 · 경학원(經學院) · 요사 등이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1963년 수종사 부도 내 유물이 보물로 지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2년에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 출토 유물 일괄이, 2013년 남양주 수종사 팔각 오층석탑이, 2019년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이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