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노소재시강록(盧穌齋侍講錄)』과 함께 저자가 진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지은 것이다. 책을 처음 완성한 것은 1554년(명종 9)경으로 그 초본을 이황(李滉)과 김인후(金麟厚)에게 보내 질정을 청하였고, 1560년에 다시 이황에게 편지를 보내 의견 교환을 통해 부분적인 수정을 거쳐 완성한 것이다.
그 뒤 1568년(선조 1) 저자가 충청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선조에게 상소문과 함께 올렸던 것을 왕명에 의해 교서관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간행본은 없어지고 필사본으로 전해지던 것을 1634년(인조 12) 승려인 두섬(杜暹)이 사재로 옥천암(玉泉庵)에서 중간하였다. 다시 1746년(영조 22) 왕명에 의해 황경원(黃景源)이 쓴 영조의 어제 서문과 이황의 『성학십도(聖學十圖)』 가운데 제10도인 「숙흥야매잠도」를 첨부하여 세 번째로 간행하였다.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숙흥야매’라는 말은 『시경』 「소아(小雅) 소완편(小宛篇)」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진백의 잠(箴)은 그 구절을 인용해 아침에 닭이 울어 일어날 때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지런히 힘써야 할 일과 마음가짐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진백의 이 잠은 성리학에 있어서 내적인 인간 수양을 염두에 두고 이룩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심학(心學)의 입장에서 전체 26구절을 8장으로 나누고, 각 장마다 먼저 훈고(訓詁)를 곁들인 주석을 달고, 다시 그 장의 주요한 의미를 해설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잠을 일관하는 요체를 ‘한결같음(一)’으로 파악하고, 주돈이(周敦頤)의 『통서』 「성가학장(聖可學章)」의 일(一)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였다. 이 저술보다 약간 뒤에 이루어진 이황의 주저인 『성학십도』의 「숙흥야매잠도」는 이 책과 약간 차이점을 보이고 있지만, 이 책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뒤에 장복추(張福樞)가 이 두 책을 참조해 『숙흥야매잠집』을 저술하였다.
조선조 성리학의 발달 과정과 특색을 드러내는 저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