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초기의 관직으로, 『삼국지』동이전 고구려조에 보이는 10관등 중 주부(注簿)·우태(優台)에 이은 제7위의 관등으로 나오고 있다. 왕의 직속관료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중국식 명칭을 가지고 있으므로 중국관제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듯하다.
그러나 『후한서(後漢書)』이후의 기록에는 보이지 않으므로, 고구려의 평양천도 후 관제변경에 따라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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