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 출신. 본관은 평산(平山). 시작 활동 초기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신연순(申淵淳)이다.
1942년 부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1948년 전주사범학교, 1953년 단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64년 건국대학교대학원 국문과를 수료하였다. 1958년 충청남도 주산농업고등학교(珠山農業高等學校)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1960년에는 월간 교육평론사(敎育評論社)에 근무하였다. 1961년 명성여자고등학교(明星女子高等學校)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뒤 1969년 죽을 때까지 재직하였다.
신동엽의 작품활동은 1959년 장시(長詩)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해 『조선일보』에 시 「진달래 산천(山川)」, 『세계일보』에 「새로 열리는 땅」을 발표하였다.
1960년 『현대문학』에 「풍경(風景)」, 『조선일보』에 「그 가을」 등을 발표하였으며, 1963년에는 첫 시집 『아사녀(阿斯女)』를 내었다. 이후 1967년 신구문화사 간행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 『52인 시집』에 「껍데기는 가라」 · 「3월」 · 「원추리」를 비롯, 7편의 시를 실었다. 같은 해에 장편 서사시 「금강(錦江)」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적 위치가 일약 부상하였다.
신동엽의 시작 경향은 광복 후 구미문학의 영향을 보인 이른바 ‘1950년대 모더니즘’을 거치지 않고, 토착정서에 역사의식을 담은 민족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다.
특히, 「금강」은 동학란을 소재로 한 ‘이야기시’로서 신동엽의 시세계를 대변하여주는 작품이다.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단지 이야기의 전개만을 주안점으로 하지 않고, 과거를 통하여 현재의 상황을 원근법적(遠近法的)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시작 외에 시극(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1966), 평론 「시인정신론」(1961) 등을 발표하였다. 『아사녀』 외에 편저로 『학생혁명시집(學生革命詩集)』(1960)이 있고, 유저로 『신동엽전집(申東曄全集)』(1975)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가 있다.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 월룡산(月龍山) 기슭에 묘가 있으며, 1970년에 신동엽의 고향 부여읍 동남리 금강변에 시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