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효사(孝思), 호는 은휴와(恩休窩). 신정미(申廷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암(申黯)이고, 아버지는 대사성 신민일(申敏一)이며, 어머니는 영동현감 성문준(成文濬)의 딸이다.
광해군 때 벼슬을 단념하였으나 인조반정 후인 1629년(인조 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1636년 정언(正言)이 되어 병자호란 때 묘사(廟社)를 따라 강화에 피난하고 강화 함락 때는 세자빈(世子嬪)의 위급을 면하게 하였다.
이듬해 척화(斥和)를 주장하다 면직되어 원주에 머물면서 독서에 힘썼다. 뒤에 사면되어 1646년 장령(掌令)이 되고, 1657년(효종 8) 필선(弼善)을 지내고, 1661년(현종 2) 장령에 이어 종성부사로 발탁되었으나, 1662년 관찰사와의 반목으로 파직되어 돌아오던 중 명천에서 병사하였다.
용모가 장대하고 의관이 검소하며 기상이 씩씩한 인물로 시문이 고결하고 글씨에도 뛰어났다. 찬성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저서로는 『은휴와집(恩休窩集)』 · 『부음록(缶音錄)』 · 『휘언(彙言)』 · 『진행초첩(眞行草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