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민요사설은 반드시 일정한 기회에 불리지 않고 여러 가지 민요에서 골고루 드러난다. 일하며 부르는 노동요의 사설이나 의식을 치르며 부르는 의식요의 사설, 여럿이 어울려 흥겹게 부르는 창민요의 사설에서도 나타난다.
민요는 백성들의 건강한 삶을 노래하는 한편, 자신들의 서러운 심경과 절박한 실정을 노래로 드러내는 본질을 지녔으므로, 거의 모든 종류의 민요사설에서 「신세타령」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민요는 가장 절실한 현실의 삶 그 자체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세타령」이라는 민요의 종류는 엄격히 말해서 독립되기 어렵다. 「신세타령」을 부르더라도 맷돌질을 하면서 부르면 「맷돌노래」, 해녀질을 하면서 부르면 「해녀노래」에 속하며 행상해 나가면서 부를 경우면 「행상노래」에 속한다.
시집살이노래의 대부분도 「신세타령」이라 볼 수 있으며, 주로 영남지방에서 나무꾼들이 부르는 「어사용(어새이)」 역시 「신세타령」이다. 삶의 어려움을 한탄한 노래, 팔자를 서러워하는 노래, 청상과부의 노래, 달거리노래·이별노래·원한노래들 모두를 「신세타령」으로 묶을 수 있다.
“설룬정녜 걸어난질은 질이조차 자울아진다(제주도 서귀포시).” 이 민요는 ‘설은 여자 걸었던 길은 길조차 갸울어진다.’는 내용으로 팔자가 사나워서 서러운 여자 걸었던 길은 그 길마저 갸울러진다는 「신세타령」으로 제주도의 빼어난 맷돌·방아노래의 한편이다.
「신세타령」은 어느 한 가지 민요에 국한해서 불리지는 않고 여러 민요사설에 폭넓게 깔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