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신평군(新坪郡)의 북쪽은 평안남도 양덕군, 남쪽은 곡산군과 수안군, 동쪽은 강원도(북한) 법동군과 판교군, 서쪽은 연산군과 평안남도 회창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28′∼127°01′, 북위 38°50′∼39°10′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1,074.58㎢, 인구는 6만 3,727명(2008년)이다.
본래 황해도 곡산군 일대인 신평군은 1952년 신설되면서 붙여진 지명이다. ‘신평’이라는 지명은 새롭게 신설되었다는 의미에서 새로울 신(新)자와 이 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벌 평(坪)자를 결합한 것이다. 즉 이 지역에 개간한 벌과 들이 많이 있음을 지명으로 표현하였다.
황해북도에서 가장 험준한 산지이자, 산맥으로 둘러막혀 있는 신평군의 북쪽은 양덕군과의 자연경계인 강동산맥(江東山脈)이, 남쪽은 언진산맥(彦眞山脈), 동쪽은 아호비령산맥(阿虎飛嶺山脈)이, 그리고 서쪽에는 서백년산맥(西百年山脈)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신평군 경계에는 황해북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이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는 황해북도의 지붕을 이루는 하람산(霞嵐山, 1,485m)과 가사산(袈紗山, 1,408m), 십자봉(十字峯, 1,166m)이, 동쪽에는 천을봉(天乙峯, 1,216m), 육판덕산(陸坂德山, 1,323m), 백년산(百年山, 1,341m)이, 남쪽에는 대각산(大角山, 1,278m), 만년산(萬年山, 901m)이, 그리고 서쪽에는 서백년산(西百年山, 1,219m), 백산(白山, 1,241m), 시루봉(1,181m), 기주봉(1,143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신평군은 해발 1,500m 이하의 중산성 산지로 남강과 그 지류에 의해 깎여 생긴 깊은 골짜기와 급한 비탈면을 가진 험준한 산악을 이루고 있으며, 백석골, 추동골, 중평동골짜리를 비롯하여 남천리의 곡애안골, 고읍리의 신성골, 평화리의 외룡골, 멱미로동자구의 퇴치골 등의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지형은 북쪽과 동쪽이 높고 남서쪽으로 가면서 점차 낮아지는 지세를 이루고 있으며, 이 지형을 따라 대동강의 지류이자 신평군 안에서 시작되는 남강(南江)과 그 지류들이 이 방향을 따라 흐르고 있다. 길이가 5㎞ 이상인 하천이 19개 군 내로 흐르고 있으며, 주요 하천은 추전강, 평촌천, 선암천, 미송천, 두무강, 화암천, 봉명천 등이다.
기반암은 화강암·화강편마암·석회암·점판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양은 대부분 지역이 갈색삼림토이 분포되어 있으며 높은 산지대에는 표백화갈색토양이, 남강 연안에는 충적토와 논토양이 약간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중석, 납, 아연, 금 등 유색금속광물과 석회석, 린 등 비금속자원 및 이탄, 초무연타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산림은 군 면적의 83%이며 주요 수종은 신갈나무·피나무·사시나무·자작나무·참나무·소나무·박달나무·다릅나무 등이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전나무와 잣나무 등이 반점상으로 분포되어 있다. 그리고 해발 1,000m 이상 지역에는 북부아한대성 식물요소들인 전나무·가문비나무·사스래나무·눈잣나무·좀참꽃·답자리참꽃 등이 자라고 있다.
기후는 신평군의 위치가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지형조건으로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보인다. 황해북도에서 연평균기온이 가장 낮은 지역 중 한 곳으로 9℃, 1월 평균기온은 -8.5℃, 8월 평균기온은 23.7℃이다. 그리고 연평균강수량 역시 황해북도에서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1,3963㎜인데, 연강수량의 56.4%가 7∼8월에 내린다.
조선시대에는 황해도 곡산군, 일제강점기에는 곡산군 상도면, 하도면, 이령면, 화촌면, 멱미면 일대가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봉명면의 동촌리와 동촌면의 오륜리를 통합하여 1읍, 17리를 관할하는 황해도 신평군으로 신설되었다. 그리고 이령면의 원곡리와 가락리를 병합한 백년리를 백년로동자구(百年勞動者區)로 승격하였다. 1958년 화암리 일부가 신평읍으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일부는 멱미로동자구(覓美勞動者區)로 개편되었다. 그리고 백년로동자구는 만년로동자구(萬年勞動者區)로 이름을 바꾸면서 거리소리 일부를 만년로동자구에 편입시켰다. 그 이외에 용산리 일부가 장암리에, 화암리 일부가 신평읍에, 생양리 일부가 거리소에, 운암리가 광천리와 용산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1995년에 장암리, 용산리, 광천리가 고읍리에 흡수되었다. 2002년 10월 현재 행정구역은 1읍(신평읍), 2구(만년로동자구, 멱미로동자구), 11리(거리소리, 고읍리, 남천리, 대지리, 도음리, 미송리, 생양리, 석암리, 선암리, 추란전리, 평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 소재지는 신평읍이다.
광복 전 광석채굴업이 주요 산업이었던 신평군 경제의 기본은 채취공업이다. 이 지역에는 광석을 다량 채굴하고 다량 처리하기 위하여 설비를 대형화하고, 운반의 다양화를 위해 도로를 고속도로화하여 생산을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광석채굴업과 함께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지에 위치한 만큼 임업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신평군에는 공업림경영소, 갱목생산사업소, 채벌사업소, 임산작업소 등 임업과 관련된 기업소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군 전체면적의 5.9%를 차지하는 농경지는 황해북도에서 농경지 비율이 가장 낮은 지역에 속하지만, 산지에 도토리, 머루, 다래를 비롯한 산과일과 삽주, 삼지구엽초, 천남성, 만삼 등의 약초가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고사리, 도라지, 두릅, 버섯 등의 산나물이 많이 산출된다. 그리고 가축업도 발달되어 있어 돼지, 소, 양, 염소, 닭, 오리 등을 사육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소의 사육량은 황해북도에서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
채굴된 광석 운반이 중요한 신평군의 교통은 도로운수가 기본을 이룬다. 평양∼원산 간 관광도로와 신계∼평안남도 양덕 간 도로가 있으며, 신평읍과 인접해 있는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구축되어 있다.
광복 전에는 소학교밖에 없었던 신평군에 현재는 광업전문학교를 비롯하여 21개의 중학교와 21개의 소학교, 20개의 분교가 있으며, 군문화회관을 비롯한 문화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신평군에서 가장 높은 하람산 아래에는 조선 태조가 기마 훈련을 했었던 치마대(馳馬臺)와 그 때 마시던 물인 수라천(水刺泉)이 있다. 이곳에는 정조의 친필로 ‘馳馬舊基碑(치마구기비)’라 적힌 비가 있다. 그리고 멱미면 마하리 문성동의 검암령(檢巖嶺)에는 문성진(文城鎭)의 성문터와 진영터가 지금도 남아 있다. 길이 험하고 진의 방어시설이 완벽해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방어했던 곳으로, 『곡산읍지』에 따르면, 진에는 첨사 통솔하에 장교 8명, 이속 6명, 나졸 8명, 아병(牙兵) 440명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