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포시 ()

인문지리
지명
함경남도 중부 동해안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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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함경남도 중부 동해안에 위치한 시.
개설

함경남도 동해안 중부에 위치한 신포시(新浦市)의 북쪽과 북동쪽은 북청군과 금호지구가, 서쪽은 홍원군과 마주하고 있다. 그리고 남쪽, 동쪽은 동해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06′∼128°25′, 북위 40°00′∼40°11′에 사이에 위치하며, 면적은 약 43㎢, 인구는 15만 2,759명(2008년)이다.

명칭 유래

신포시는 과거 동해를 접하고 있는 작은 어촌마을이었으나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큰 어장으로 변화하였다. 즉 마을 이름이 새롭게 번창해지는 포구라는 뜻에서 ‘신포(新浦)’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 신포시는 굴지의 어항도시이다.

지명의 또 다른 유래는 전해져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여름 장마철 때마다 범람하여 마을 전체를 씻어 내렸던 마을의 개울을 시씻개라 불렀다고 한다. 후에 ‘시씻개’의 음이 와전되면서 ‘시신개’가 되었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새 신(新)자와 개 포(浦)자로 옮겨 ‘신포’라 하였다.

자연환경

시의 북부는 서부경계지대에 뻗어 있는 거두봉산맥과 신포시에서 가장 높은 종산(鐘山, 703m)이 솟아있는 산지이고, 해안으로 연결되는 남부는 대부분 해발 100m 이하의 좁고 긴 평야이다. 산지인 북부에는 종산을 비롯하여 암해산(432m)·수암산(368m) 등이 자리 잡고 있고, 이들을 넘는 사기령(381m)·배나무고개(181m)가 있다. 그리고 시의 중앙부를 거두봉산맥이 뻗어내려 종산(703m)·거리말서산(426m) 등이 솟아 있다.

거두봉산맥과 그 지맥들 사이에는 용원분지(龍原盆地), 양화분지(陽化盆地)가 형성되어 있고, 해안에는 사취와 사구들이 형성되어 있다. 신포시의 해안선은 비교적 굴곡이 심해 출입이 복잡한 편으로, 남쪽에는 양화만(陽化灣)과 송도갑(松島岬)이 있다. 그리고 신포항 앞에는 항의 앞면을 가로막아 방파제 구실을 하는 마양도(馬養島)가 있고, 마양도 이외에도 신도, 대구단과 같은 작은 섬들이 분포하고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북동부에 남대천(북청)이, 남서부 시계(市界)에는 홍원군을 사이에 두고 관개용수와 음료수 등으로 이용되고 있는 동대천(신포)이 흐르고 있다. 이 밖에 시에는 양화만으로 유입되는 양화천(陽化川), 부창천(富昌川), 보주천(寶珠川) 등 작은 하천들이 흐르고 있지만, 대부분 이 하천들은 길이가 짧고 하천망이 발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해안에는 용연호(1.06㎢)·대인호(0.28㎢)·현금호(0.48㎢) 등의 호수가 있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토양은 갈색삼림토이다. 부창과 신풍 일대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산림면적은 시 전체 면적의 약 60%를 차지하며, 소나무와 참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9.4℃, 1월 평균기온 -4.1℃, 8월 평균기온 22.7℃이고, 연평균강수량은 751.6mm로 4∼10월 사이에 연강수량의 약 90%가 집중되어 있다. 강수량은 시기뿐만 아니라 지역적 분포에서도 차이가 보인다. 동서 사이의 차이보다는 남북 사이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해풍이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면서 산지에 부딪쳐 비를 내리기 때문으로 마양도로부터 내륙지방으로 가면서 강수량이 많아진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이 지역은 조선시대 함경도 북청부에 속해 있었던 곳이며, 일제강점기에는 북청군 신포읍, 속후면, 양화면과 홍원군 용원면의 일부 지역이었다. 1952년 북청군의 신포면과 양화면, 홍원군의 용원면과 용포면의 전체 리를 통합하여 신포군을 신설하여 1읍 3구 20리를 관할하였다. 당시 3구는 육대리, 동호리, 마양도리를 각각 로동자구로 승격한 것이다. 1960년 10월 신포군의 일부 지역은 시로 승격되어 10동 8리를 관할하였고, 동대천 유역의 삼성리를 포함한 8개의 리는 홍원군에, 용중리 일부가 홍원군 운포리에, 용성리 일부가 삼성리에, 호만포리와 방가대리가 신창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마양도리의 경우 1971년 5월 로동자구로 승격되었으나, 3년 뒤인 1974년 마양동으로 격하되었고, 같은 해 신창군이 폐지되면서 남대천(북청) 서쪽의 8개리가 신포군으로 편입되었다. 그 이후 영무동이 풍어동(1977년)으로, 중흥리가 속후리(1986년)로 각각 개칭되었고, 1995년 금호지구가 신설되면서 신포시의 8개 리가 금호지구로 편입되었다. 2002년 현재 행정구역은 16동(광복일동, 광복이동, 동호일동, 동호이동, 연호동, 육대일동, 육대이동, 마양동, 신흥동, 양지동, 어항동, 포항동, 풍어동, 해산동, 해암일동, 해암이동), 6리(용중리, 보주리, 부창리, 신풍리, 신호리, 양화리)로 이루어져 있다.

현황

굴지의 어항도시인만큼 신포시는 예로부터 북한의 주요 물고기산지 중 한 곳이며, 주 산업은 수산업이다. 특히 신포, 양화만 부근은 어족이 풍부하고 어획량이 많아 수산업종사자가 많다. 주요 어획지역은 신포수산사업소, 양화수산사업소, 육대수산사업소이며, 이곳에서는 명태, 가자미, 도루묵, 낙지, 멸치, 방어, 빙어, 홍어 등이 잡힌다. 또한 신포시에서는 해얀앙식에 유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문어, 새우, 미역, 다시마, 가리비, 해삼과 같은 양식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가운데 미역과 다시마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신포시는 수산물생산과 함께 수산물가공공업이 유명하다. 이곳은 명란젓과 창란젓을 비롯하여 절임품, 건제품 등을 생산하는 종합적이고 현대적인 물고기가공기지로서, 냉동품과 통조림가공품이 주류를 이루며 대규모 물고기냉동공장들과 통조림공장이 건설되고 있다.

식료품공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지방공업은 지방공업과 도시근로자를 위한 수산물, 과일, 채소를 가공하는 식료공장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수지일용품, 철제일용품, 학용품, 종이 등 소규모의 일용품·피복·공예품 등의 공장들이 있다. 그리고 경지는 시 면적의 약 26%로, 쌀·옥수수·콩·감자 등이 재배되고 있고, 과일은 사과·복숭아·포도 등이 생산된다.

어항도시로 발전하기 위해 신포시는 철도, 도로, 해상 등 발전된 교통수단과 교통망을 가지고 있다. 동해안을 따라 평라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여기에 풍어·신포·양화역이 설치되어 있다. 도로는 원산∼우암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개통되어 있고, 이를 통해 홍원∼신포∼신북청, 신포∼북청 간 정기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그리고 신포항을 통해 수상통로가 개설되어 있다.

신포시에는 사범대학을 비롯하여 유치원, 탁아소 등 많은 교육기관이 있으며, 시인민병원과 같이 현대적 의료시설을 갖춘 전문치료예방기관이 있다.

참고문헌

『2008년 인구조사』(조선중앙통계국, 2009)
『조선향토대백과』7(한국 평화문제연구소·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3)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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