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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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중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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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공복|관복
관련 의례
진찬|진연
내용 요약

악인복(樂人服)은 조선시대에 궁중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을 뜻한다. 악인의 구분이 시대에 따라 변모하였고 의식의 종류에 따라 복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조선 후기 진찬 · 진연의궤류에서 다양한 악인 복식이 확인되며, 전악(典樂) · 악사(樂師) · 악생(樂生) · 악공(樂工)과 노래하는 사람인 가자(歌者)의 복식이 대표적이다. 악인들은 양인 · 천민 출신이지만 의식(儀式)에 직접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특수한 직분의 사람들이므로, 연주 시에는 특별히 공복(公服)과 관복(冠服)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궁중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
내용

조선시대에는 의식(儀式)의 종류가 많고, 주23의 구분이 시대에 따라 변모함에 따라 악인복도 종류가 다양하고 변화되었다.

세종 때, 아악을 연주하는 주17과 아악 등가(登歌)주18복두(幞頭), 주1, 주2, 주3을 입고, 허리에는 금동 혁대, 주4를 띠고, 흰 버선[白布襪]에 가죽신[烏皮履]을 신었다. 도창(導唱) 악사는 방심곡령(方心曲領)을 덧입었다. 등가 ‧ 헌가(軒架)주20주5을 쓰고 주6, 금동혁대를 띠고, 흰 버선에 오피리를 신었다. 속악 등가의 악사는 복두를 쓰고 주7을 입고, 목이 긴 주8를 신었다. 등가 ‧ 헌가의 악공은 개책을 쓰고 비란삼을 입고 백초대(白綃帶)를 띠었다.

성종 때, 등가의 악사는 복두를 쓰고 녹초삼을 입고 오혁대(烏革帶)를 띠고 주19를 신었으며, 도창 악사는 세종 때와 같았다. 등가 ‧ 헌가의 악생은 개책을 쓰고, 비란삼을 주21와 흑록(黑綠) 백주 주22 위에 입었으며, 허리에는 주9를 띠고 주10주11를 신었다. 등가 악공은 개책을 쓰고 비란삼을 백주 중단 위에 입고 백주말대를 띠었다.

여러 『진연의궤(進宴儀軌)』 중에서 숙종대의 『기해진연의궤(己亥進宴儀軌)』(1719)와 영조대의 『갑자진연의궤(甲子進宴儀軌)』(1744), 을유(乙酉)년 『수작의궤(受爵儀軌)』(1765)의 기록에 있는 악인의 복식은 가동복(歌童服), 전상공인복(殿上工人服), 집박공인복(執拍工人服), 권착공인복(權着工人服), 관현맹인복(管絃盲人服)과 아악공인복(雅樂工人服) 등이 있다.

을묘년 『원행을묘정리의궤』(1795) 이후의 조선 후기 역대 주24 · 주25 주26에서 ‘정재도’와 ‘복식도’, 소요 물품을 상세히 기록한 ‘품목’조와 ‘악기풍물’조에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 악인 복식이 상세하게 확인된다.

악사는 악인의 대표로서 실제 음악 연주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인물로서, 악공(樂工)을 거쳐 장악원주27 최고직인 정6품에 해당하는 전악(典樂) 1명과 종6품직 부전악(副典樂) 2명에 임명된다. 을묘년(1795)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주28 복식에 악사의 기록만 있다. 악사는 복두, 주29 형태의 녹초삼, 주13를 입었다. 전악의 복식은 기사년(1809)부터 기록이 나타나며, 주14, 단령 형태의 녹초삼이나 청삼(靑衫), 오정대나 은야대(銀也帶), 흑피화나 오화(烏靴)로 기본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다. 다만 무자년(1828) 순조비 탄신일과 기축년(1829) 순조 탄신일에 맞추어 거행된 6월 행사에서는 예외적으로 주15주16가 포함된 자라포(紫羅袍)를 착용하였다.

악공(樂工)은 주30 출신으로 주31향악(鄕樂)당악(唐樂)을 연주하는 악인이다. 이에 반해, 악생(樂生)은 장악원에 소속되어 종묘, 사직주32 아악을 연주하는, 양인(良人) 출신의 악학도이다. 악공과 악생은 동일한 복장을 한다. 그들의 모자는 앞부분에 홍색 화문(花紋)이 그려져 있고 양각이 수평으로 부착된 화화(畵花) 복두를 썼으며, 단령 형태의 주34를 입고 오정대(烏鞓帶)를 허리에 둘렀다. 이 원칙은 모든 의궤에 적용되었다. 전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무자년(1828)과 기축년(1829)에는 족화 복두와 녹라포, 주35, 금동 야대, 흑화 차림이 혼용되어 기록되어 있으나 전래되는 의궤류에서 녹라포를 착용한 악공은 찾아볼 수

가자(歌者)주37는 정재(呈才) 때에 주36을 부르던 가동(歌童)을 뜻한다. 나이 어린 악인(樂人)으로 장악원(掌樂院)의 우방(右坊)에 소속되어 악공이나 악생이 참여할 수 없는 궁중 주38에서 연주하기도 하였다. 기축년(1829)과 임진년(1892)에 자적(紫的) 두건, 녹색 단령, 자적 주39, 흑화(黑靴)로 변화 없이 동일하게 착용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악학궤범(樂學軌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단행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후기 궁중 연향 문화』 권1(민속원, 2003)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후기 궁중 연향 문화』 권2(민속원, 2005)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 후기 궁중 연향 문화』 권3(민속원, 2005)
주석
주1

종묘나 문묘 제향 때에, 댓돌 위에서 악장을 노래하는 사람이 입던 붉은 빛깔의 예복.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악사나 악공, 공인(工人) 등이 입던 흰 명주 바지. 두 가랑이 끝에 버선이 달려 있다.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 악사나 악공, 공인(工人) 등이 입던 흰색 예복의 한 가지. 직선 깃과 넓은 소매에 깃ㆍ섶ㆍ소매ㆍ도련의 가장자리를 검은 비단으로 둘렀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 악공이나 악생이 사용하던 흰색 비단으로 만든 허리띠. 우리말샘

주5

중국의 전국 시대에 문관이 쓰던, 헝겊으로 만든 관(冠).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 악사나 악공, 공인 등이 백주 중단 위에 입는 예복 두루마기. 붉은색이나 검정색 비단으로 만들며, 둥근 깃에 넓은 소매 그리고 가슴과 등, 양 어깨에 난새와 봉황새를 그린 흉배가 붙어 있다. 우리말샘

주7

종묘 제향 때, 당악이나 당악 정재, 향악이나 향악 정재를 주로 하는 우방 악사들이 입던 푸른색의 예복.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문무백관이 공복(公服)에 맞추어 신던 검은 가죽 목화(木靴). 우리말샘

주9

조선 시대에, 악공이나 공인(工人)이 띠던 흰 명주로 만든 띠. 우리말샘

주10

흰 베로 만든 버선. 우리말샘

주11

악사나 공인들이 신던 끈이 달린 검은 가죽신. 우리말샘

주13

전악(典樂), 악생(樂生), 악공(樂工)이 공복(公服)에 띠던 대. 우리말샘

주14

조선 시대에, 전악(典樂)이 공복(公服)에 쓰던 모자. 이 관을 쓰고 청삼을 입고 오정대를 띠며 흑피화를 신는 것이 정한 법식이었다. 우리말샘

주15

예전에, 중국에서 쓰던 관(冠)의 하나. 당나라 때에는 임금이 많이 썼으나, 뒤에는 사대부들이 사용하였다. 우리말샘

주16

조복(朝服)이나 제복(祭服)을 입을 때, 그 안에 받쳐 입는 얇은 옷. 우리말샘

주17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18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19

예전에 악인(樂人)들이 신던, 검정 가죽으로 만든 신발. 우리말샘

주20

조선 시대에, 장악원의 좌방에 속하여 아악을 연주하던 사람. 양인 출신으로 공천(公賤) 출신의 악공보다 지위가 높았다. 우리말샘

주21

조선 시대에, 악사나 악공, 공인(工人) 등이 입던 흰 명주 바지. 두 가랑이 끝에 버선이 달려 있다. 우리말샘

주22

조선 시대 악사나 악공, 공인(工人) 등이 입던 흰색 예복의 한 가지. 직선 깃과 넓은 소매에 깃ㆍ섶ㆍ소매ㆍ도련의 가장자리를 검은 비단으로 둘렀다. 우리말샘

주23

악사(樂師), 악생(樂生), 악공(樂工), 가동(歌童)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24

진연(進宴)보다 규모가 작고 의식이 간단한 궁중의 잔치. 우리말샘

주25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에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 우리말샘

주26

예전에, 나라에서 큰일을 치를 때 후세에 참고하기 위하여 그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경과를 자세하게 적은 책. 우리말샘

주27

조선 시대에, 의학ㆍ역학ㆍ음양학ㆍ율학ㆍ산학 따위를 맡아보던 벼슬. 최고 정육품으로서 그 이상의 품계에는 오를 수 없었다. 우리말샘

주28

대궐 안의 잔치 때에 벌이던 춤과 노래. 우리말샘

주29

조선 시대에,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 우리말샘

주30

죄를 지어 종이 되거나 속공(屬公)되어 관아에 속하게 된 종. 우리말샘

주31

우리 고유의 전통 궁중 음악을 중국계의 아악이나 당악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고려 이후로는 향악과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우리말샘

주32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 우리말샘

주34

조선 시대에, 문소전, 연은전, 소경전 따위에서 음악을 맡아보던 사람들이 입던 붉은색 예복. 흉배에 녹색 모란 무늬를 붙였다. 우리말샘

주35

남자의 상복(喪服) 속에 입는 소매가 넓은 두루마기. 우리말샘

주36

조선 초기에 발생한 시가 형태의 하나. 나라의 제전(祭典)이나 연례(宴禮)와 같은 공식 행사 때 궁중 음악에 맞추어 불렀으며, 주로 조선 왕조의 개국과 번영을 송축하였다. <용비어천가>, <문덕곡#GT#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우리말샘

주37

대궐 안의 잔치 때에 부르던 노래. 또는 그 노래를 부르던 사람. 민간인 가운데서 가곡과 가사에 능통한 사람을 뽑아 편성하는데, 네 사람이 앞에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르고, 악공 두 사람이 뒤에서 거문고와 가야금으로 반주하였다. 우리말샘

주38

조선 시대에, 내빈(內賓)을 모아서 베풀던 궁중 잔치. 우리말샘

주39

조선 시대에, 구군복(具軍服) 차림에 전복(戰服) 위의 가슴에 두르던 띠를 이르던 말. 우리말샘

집필자
이명은(우리옷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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