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녕(興寧), 자는 원지(員之). 아버지는 안석(安碩)이며, 형은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안축(安軸)이다.
1320년(충숙왕 7) 문과에 급제, 광주사록(廣州司錄)에 임명되고, 다시 춘추관수찬(春秋館修撰)을 거쳐 편수관(編修官)을 역임하였다. 1344년(충목왕 즉위년)에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합격하여, 요양행중서성조마 겸 승발가각고(遼陽行中書省照磨兼承發架閣庫)로 있다가 노모(老母)를 위해 귀국하였다. 이해 양광도안렴사(楊廣道按廉使)를 거쳐 이듬해 교주도안렴사(交州道按廉使)를 역임하였다.
그 뒤 우대언 겸 집의(右代言兼執義)를 거쳐 충정왕 때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1352년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고, 이어 감찰대부제조전선사(監察大夫提調銓選事)를 지냈다. 1355년 밀직제학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지공거(知貢擧: 고려시대 과거시험관) 이공수(李公遂)와 함께 진사(進士)를 뽑았으며, 이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려고 하자 고향인 흥녕 가까이서 일을 볼 수 있도록 동경유수(東京留守)에 제수되었다.
항상 청렴한 생활을 하였으며, 형인 안축과 함께 안향(安珦)을 제향(祭享)한 소수서원(紹修書院)에 배향(配享)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